이번 글의 제목은 "천국은 복음이 아니다"로 정했습니다.
마태복음이 예수께서 '천국복음' 전하셨음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분이라면 이 제목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그래서 용어 정리를 다시 한 번 하겠습니다.
앞의 글에서 밝힌바와 같이 성경에 나타난 '천국'은 하나님 나라의 상징적 표현입니다.
죽어서 가는 천상 도시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여기에서 사용하는 '천국'은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관용적으로 사용되는 '죽어서 가는 천상도시'를 가리킵니다.
앞으로 저는 천상도시를 가리키는 전통적 의미의 천국을 '천국'으로 사용하고
하나님 나라의 상징으로서 천국은 본래 의미인 '하나님 나라', 혹은 우리 말로 풀어서 '하늘 나라'라고 사용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번 말합니다.
천국은 복음이 아닙니다.
기독교 복음은 천국이 아니라 '몸의 부활'입니다.
천국교리가 복음이 아닌 이유는 간단히 말해
천국교리가 죽음의 문제를 온당하게 다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본질적으로 구원의 문제와 관련이 있고 구원은 매우 진지하게 죽음의 문제를 기반으로 서 있습니다.
그래서 천국교리는 복음이 될 수 없습니다.
앞의 글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천상도시 입주 교리는 예수의 죽음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이 교리에서 예수의 죽음이 갖는 유일한 의미는,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치자' 입니다.
천국교리가 죽음을 대하는 방식은 '무시'입니다.
죽었지만 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죽음은 허상이고 우리는 죽음과 동시에 천상도시로 입주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죽음 이후가 두렵기는 하지만 그것은 죽음 이후에 내가 천상도시에 입주할 수 있는가 없는가 때문이지, 죽음 자체가 얼마나 지독하고 악날한 권세를 가졌는지 인식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죽음을 무시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가장 마지막에 심판 받을 대상은 '죽음'(혹은 사망, 혹은 하데스, 혹은 지옥, 혹은 죄)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죽음은 인류가 경험하는 모든 죄와 질병, 아픔과 저주, 마귀의 권세를 대표하는 개념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못을 박습니다.
이는 생물학적 죽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인류가 경험하는 모든 악의 문제와 죄의 고통을 포괄적으로 표현하는 말입니다.
천국교리는 이 죽음을 무시합니다. 죽음이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속입니다.
그래서 천국교리 안에는 부활에 대한 감격이 없습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환희가 없습니다.
죽음을 무시하는 천국교리의 더 큰 문제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나타납니다.
세상에는 죽음이 가득합니다.
조금 다른 표현을 사용하면, 세상이 지옥입니다. 죽음의 권세가 충만한 것입니다.
가난, 질병, 인종차별, 환경파괴, 도박, 마약, 폭력, 전쟁, 경제적 불평등, 착취, 소외, 살인, 강간, 방치, 편견, 이기주의, 무관심, 조롱 등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지옥 권세가 세상에 편만하게 널려 있습니다.
천국교리는 죽음을 무시하기 때문에, 세상에 널려 있는 죽음의 권세도 무시합니다.
그런 죽음의 권세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꾸며댑니다.
그리고 천상도시에 입주하는 것만이 그리스도인의 유일한 소망이라고 속입니다.
천상도시에서 조금이라도 더 넓은 아파트에, 조금이라도 더 편리한 싱크대 사용하는 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충성해야 할 이유라고 말합니다.
이 모두가 죽음과 죽음의 권세를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죽음, 죽음의 권세를 무시하는 것은 복음이 될 수 없습니다.
복음은 '죽음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참 복음은 죽음의 권세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깨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상 입주가 아니라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한 번도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들은 모두
이 세상이 아니라 '이 세대'에 대한 부정입니다.
죄의 권세가 충만한 이 세대, 세상의 통치자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이 세대,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난을 당하는 이 세대에 대한 부정인 것입니다.
참 복음은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의 회복입니다.
죽음의 권세가 창궐하여 죄와 악으로 가득한 하나님의 세상이 회복되는 것이 복음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죽음의 권세에게 죽임을 당하셨고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능력으로 이 세상 안에 있는 모든 죽음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회복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천상도시 입주 교리는 예수의 죽음을 무가치하게 만듭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뒤통수를 칩니다.
예수의 죽음이 '천국가는 티켓이라고 치자'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거기에는 죽음에 대한 진지한 수용과 죽음의 권세를 넘어서는 부활의 능력이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정리합니다.
천국교리가 복음이 아닌 이유는, 그것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천국교리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중심에 두는 것이 아니라 부수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그런 걸로 치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죽음을 '무시'하는 천국교리는 죽음 권세의 심각성으로부터 하나님의 세계를 구원하시는 하나님도 무시합니다.
그래서 천국교리는 기독교 복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스도인의 소망인 부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음 글에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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