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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17일 일요일

요한복음연구 11

요한복음 3장 31-36절

하늘과 땅

예수에 대한 요한의 증언은 요한복음의 신학적 진술로 이어진다. 이 진술 안에는 요한복음이 전제하고 있는 신학적 배경이 드러난다. 요한복음은 이러한 신학적 배경이 매우 분명하게 유지된다. 이러한 우주관은 요한복음을 이원론적, 영지주의적 복음서로 오해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본문에는 두 가지 분명한 대조가 나타난다. 그리고 이 대조는 요한복음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사상이다. 첫째는 땅과 하늘의 대조이고(3:31) 둘째는 영생과 진노의 대조이다(3:36). 영생이 하늘에 속한 것이라면 진노는 이 땅의 현재 상황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조의 핵심에서 양편을 통합하는 다리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3:35).

한때 요한복음에 나타난 하늘과 땅의 분리, 영생과 진노의 분리를 헬라적 이원론으로 치부하여 거부된 적이 있었다. 아직도 싸구려 긍정신학이나 범신론적 영성이론은 하늘과 땅의 분리를 거부한다. 땅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과 심판의 거부, 창조세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숨결에 대한 지나친 강조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의 근본적인 구분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런 구분은 헬라적 이원론으로 매도되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의 분리는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은 결과가 아니라 전통적 히브리 사상이다. 구약성경의 수많은 곳에서 하늘과 땅은 분리되며(창1:1, 신26:15, 왕상8:30, 시53:2, 시115:16) 하나님은 하늘에, 인간은 땅에 있음이 강조된다(전5:2). 하늘은 하나님의 영역에 대한 상징으로, 땅은 인간의 영역을 나타내는 장소로 사용된다.

헬라 사상에서 땅은 전적으로 악하고 열등한 곳이다. 그래서 인생의 가장 큰 목적은 악한 이 세상을 벗어나는 것, 온전한 이데아의 세계, 곧 하늘로 도피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약성경이 보여주는 땅은 그 악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핵심적인 한 부분이다(창1:1, 신10:14, 시89:11). 그렇기 때문에 구약성경의 비전은 이 악한 땅을 벗어나 하늘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이 이 망가진 땅을 고치시는 것이다(대하7:14).

요한복음에 나타난 하늘과 땅의 구별은 헬라적 이원론에 의한 대립이 아니라 철저하게 유대적 소망 안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이 세상에서의 도피가 아니라 이 세상을 사랑
하신 하나님에 관해서 말한다(3:16). 이 세상이 어둠으로 덮여 있다는 인식은 이 세상에 대한 부정으로 나가지 않고 오히려 이 세상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3:35)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우주적 계획으로 발전된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땅에 있는 인간을 만나기 위해 내려오시는 장소는 성전이었다(대하6:18). 성전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장소로 하나님의 영광의 절대적 상징이었다.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하나님께서 상대적이고 유한한 인간의 세계에 들어오시는 공간, 그 사건이 곧 성전이다.

요한복음은 이러한 성전의 권위를 거부하며(2:19)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고(1:14) 그 안에 하늘과 땅의 만남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이 땅에서 생겨난 성전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 이루어진다(3:34).

이런 맥락 안에서 아들을 믿는 자와 아들에게 순종하지 않는 자라는 대조(3:36)가 그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흔히 믿는 사람은 영생을 얻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진노가 있다는 말씀을 개인적 구원에 관한 말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아들을 믿는 사람은 구원 받아 천국에 가고 믿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 간다는 말씀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유대적 소망, 더 나아가 요한복음의 비전은 이 악한 세상을 떠나 하늘로 옮겨 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이 세상을 비춰가며 고쳐가는 하나님의 영광에 관한 이야기가(17:4 예수께서는 자신의 사역을 통해 아버지의 영광이 세상을 비추고 있다고 고백한다) 요한복음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토양이다.

따라서 이 말씀은 사후(死後) 천국행이냐 지옥행이냐에 관한 말씀이 아니다. 오히려 이 세상은 이미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여 있다(3:36).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이 세상이 이미 지옥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들을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다는 말씀은 개인구원의 차원에서 천국행을 약속 받았다는 말이 아니라 이 어두운 세상을 밝혀 가시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 안에, 그리고 창조세계 안에 운행하던 하나님의 영(창1:2)은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창조 사역 안에 동일하게 역사하신다(3:34).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만물을 그의 아들에게 위임하셨고(3:35) 아들은 창조세계의 진정한 동산지기로서(20:15) 이 창조세계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영에 의해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아들을 믿는 자란 그 구원 역사에 일부분이 되어 그 이야기의 참여자가 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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