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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4일 금요일

조상 제사와 기독교 신앙

설입니다. 모두들 평안하시고 기쁨 가득한 명절 되셨는지... 안부를 전합니다.

설이 되면 교회마다, 가정마다 걱정거리가 생겨납니다. 기독교 신앙이 3대, 4대 내려온 가정이 아니라면 대부분 타종교와의 갈등이 있게 마련인데, 그 갈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때가 이 명절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제사 문제지요...

제사를 바라보는 교계의 시각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전통적 미풍양속으로 이해하여 인정해 주는 사람들도 있고(대표적으로 가톨릭이 있겠네요), 우상숭배로 규정하여 철저하게 금지하는 극단적 입장도 있고(장로교 보수교단들이 그렇습니다), 절만 하지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절충적 입장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어떤 것이 바른 입장인지 정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만 기독교 신앙 안에서 조상제사가 지니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 먼저 조상제사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 다음으로 성경에 나타난 우상숭배가 무엇인지 살펴본다음 조상제사와 기독교 신앙에 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조상제사의 의미

1) 정치적 의미

제사는 유교의 가르침입니다. 현재 한국 사회의 제사는 유교와 불교가 혼합된 형태를 띠고 있지만 본래 제사는 조선 왕조가 불교를 배척하고자 유교를 도입하면서 강화했던 종교적, 정치적 행위었습니다.
모든 종교가 그렇듯이 종교는 언제나 정치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조선왕조의 유교 도입도 상당히 정치적 맥락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유교의 근간은 가부장제이고(수신제가 치국평천하란 말도 있죠^^), 국가를 가정의 확대판으로 이해했던 유교 정치이념에 따라 조선은 가부장적 권력으로 나라를 통치했습니다. 물론 조상제사 제도가 그 핵심에 있었던 것이죠.

유교와 제사제도를 통해 가정에서는 조상제사의 주체로서 가부장의 권한이 더욱 강화되었고, 국가와 왕의 권한도 동시에 강화되었습니다(왕은 선왕들의 제사를 모시는 자로서 국가적 가부장입니다). 왕은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해, 자신의 권력 원천이 조상들에게서 나옴을 보여주기 위해 종묘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왕과 가정에서의 가부장은 조상 혼령들의 힘을 등에 업고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시켰습니다(당연히 가정에서 여성들의 입지는 작아졌겠죠).

이런 맥락에서, 제사란 국가나 집안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통치 이데올로기의 핵심 의례로 사용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제사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갑니다. 당연히 제사를 담당해야 하는 장남에게 2/3 가량의 유산이 상속되고, 제사와 상관없는 여성에게는 한 푼의 유산도 지급되지 않게 되었습니다(참 놀랍게도 이런 불평등 상속은 1990년대 초반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아직도 유교의 영향력이 대단합니다). 사실 고려시대만 하더라도 여성에게 동일한 유산이 상속되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이런 불평등 상속은 국가권력을 강화시키고 가부장제도를 유지시키기 위한 기본적 수단이었던 셈입니다.

2) 종교적 의미

가부장적 국가권력 유지를 위해 사용된 유교와 제사 의례는 종교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 상황에서 제사는 불교와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그 기본적인 의미가 많이 퇴색되긴 했지만 제사의 근본적인 종교 의미 또한 중요합니다.

엄밀히 말해 유교에는 내세관이 없습니다. 종교의 가장 핵심이고, 인간의 가장 근본적 욕망인 내세에 대한 직접적 약속이 없기 때문에 유교는 이 부분을 제사를 통해 해결합니다. 즉, 자손들의 제사를 통해, 자손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택한 것이 유교의 제사법입니다.

가통을 이을 아들에 대한 집착이나, 제사를 통해 조상을 섬기는 것에 대한 집요함은 사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그것을 극복해 보려는 유교식 대처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한국 사회는 불교인들도 모두 제사를 드리기 때문에, 유교식 제사에 불교식 내세관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3) 전통 무속신앙적 의미

그러나 한국적 조상 제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의미 안에는 '기복주의'라 불리는 전통 무속신앙이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살펴봤듯이 전통적 유교식 조상제사는 한국 사회에서 찾아보기 어렵고 무속신앙과 혼합된 제사가 대부분입니다.

신라 법흥왕이 불교를 받아들이며 백성들의 무속적 신앙을 타파하려 했지만 결국 불교가 무속신앙에 잠식되고 말았듯이(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점집은 보통 불교 사찰 표시를 하고 있습니다) 유교 또한 무속신앙에 점령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 불교나 유교가 혼합적 성격을 보이는 이유도 모두 무속신앙의 힘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기독교 조차도 무속신앙의 위세 앞에 자유롭지 못합니다. 기독교 신앙이라고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들도 무속적 신앙인 경우가 많습니다).

무속신앙적 조상제사의 핵심적 의미는 바로 '기복'입니다. 모두 복을 받기 위해서이지요. 현재 한국 사회의 조상제사에서 가장 핵심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가부장제를 통해 권력 유지도 필요하고 내세에 대한 소망도 중요하지만, 가장 핵심은 조상을 잘 모셔서 복을 받아 일이 잘 풀리기를 바라는 무속신앙적 믿음입니다.

2. 성경에 나타난 우상숭배

1) 십계명

제사와 관련된 우상숭배 금지는 주로 십계명을 근거로 합니다.

      "너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출20:3)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출20:4-5)

십계명의 1, 2 계명입니다. 제 1계명의 '나 외에'라고 번역된 말씀은 본래 '내 앞에서'입니다. 그래서 이 계명은 다른 신, 이방 신을 거부한다기 보다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 다른 형상과 다른 욕망을 좇는 혼합주의에 대한 거부의 의미가 강합니다.

이방신을 섬기는 이방인은 원천적으로 이스라엘의 회중에 들 수 없습니다. 십계명이 하나님과 언약한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입을 기억할 때 '내 앞에서'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은 일차적 의미에서의 이방신 거부라기 보다 엄밀히 말해 혼합주의 거부로 받아들여야 그 핵심적 의미가 정확해집니다.

출애굽기에는 우상을 섬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보여주는데, 모세가 산에 올라 있는 동안에 아론을 중심으로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서 중요한 점은 아론이 백성들을 향하여 금송아지를 가리키며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해낸 너의 신이다' 라고 말하며 '여호와의 절기'를  공포한 것입니다(출32:4-6).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우상숭배의 핵심은 다른 이방 신을 섬기는 것이라기 보다 여호와라는 이름 '앞에서' 자신들의 욕망을 좇아 눈에 보이는 형상을 만들어내는 혼합주의입니다.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절하지 말라, 섬기지 말라는 명령도 같은 맥락입니다. 십계명에서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가장 핵심적 이유는 다른 종교를 갖는 것보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야훼신앙을 훼손시키는 것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2) 바알 숭배

유목민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가장 많은 문제를 일으켰던 것이 바로 바알 숭배입니다.

바알은 농경생활을 하던 가나안의 '풍요의 신'으로서 목축민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참으로 매혹적인 것이었습니다. 물질적 풍요를 약속하며 절기때마다 성전에서 행해지던 성행위(성행위는 다산과 풍요의 상징적 의미를 지닙니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 끊임 없이 우상숭배를 질책하며 가난한 자들을 압제한 죄와 음란함을 동시에 책망하는 것은 바알 숭배가 물질적 집착과 성적 방종을 동시에 조장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끊임 없이 유혹하며 곤경에 빠뜨렸던 우상숭배의 핵심에는 이방 신들이 약속하는 풍요와 안락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상숭배는 교묘하게 야훼신앙에 파고들어 야훼신앙을 훼손시키고 야훼신앙의 가치를 떨어뜨렸습니다.

3. 조상 제사와 기독교 신앙

보수적 기독교인들은 조상제사 행위를 성경에 나타난 우상숭배와 동일시 하며 철저하게 배격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우상숭배와 조상제사 행위가 완전하게 겹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제사를 드리며 종교적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조상제사와 우상숭배가 겹치는 부분도 무시할 수 없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은 단지 조상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제사를 드리기도 합니다(이런 경우 조상제사가 성경의 우상숭배와 같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또한 보수적 신앙인들은 절 하는 행위 자체에 많은 의미를 두고 철저하게 금지하지만, 십계명에서 금지하는 '절'은 '섬김'의 다른 표현으로서 우상을 예배의 대상으로 만들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조상제사에서 절하는 행위는 일종의 섬김 행위일 수도 있지만(어떤 사람들은 이런 의미로 절합니다) 어떤 사람에겐 단지 예의 차원에서 치뤄지는 의례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차이점들을 무시한 채 조상제사를 문자적 의미로 우상숭배라 규정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오히려 조상제사 행위를 무조건 금지하기 보다 조상제사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유익들을 잘 살펴보고 좋은 방향으로 변혁될 수 있도록 연구가 뒷받침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조상제사와 관련하여 더 중요한 문제는 기독교 안에 들어온 혼합주의입니다.

앞에서도 살펴봤듯이 조상제사 안에는 여러가지 의미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유교적, 무속적 가치들이 기독교 안에 고스란히 흘러 들어와 기독교 신앙을 훼손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조상제사는 가부장 제도를 기반으로 한 권력 유지 수단입니다. 이런 권력구도 안에서 여성과 어린이의 인권은 짖밟히기 쉽습니다(명절이 되면 여성들의 인권 유린은 심각한 수준이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성과 아이의 인권을 소중하게 여기며 하나님 나라 안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선언합니다. (안따깝게도 현실에선 그렇지 못할때가 많지만,) 성경은 가부장 제도나 이런 불평등한 권력 구도를 단죄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 신앙은 조상 제사를 거부합니다.

조상제사는 죽음을 극복해 보기 위한 인간적 수단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방식의 영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부활을 통한 영생을 약속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 신앙은 조상제사와 양립할 수 없습니다.

조상제사는 물질적 복만을 추구하는 무속적 신앙을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물직적 풍요를 거부합니다. 부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고,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선언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 신앙은 조상제사의 근본적 동기를 거부합니다.

결론적으로,
기독교 신앙은 조상제사를 거부합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단지, 절하는 행위 때문이거나 조상제사가 일차적 의미에서 우상숭배이기 때문이 아니라
조상제사가 전제하고 있는 가치나 의미가 반(反) 기독교적이기 때문입니다.

명절이 되어 가족들이 모이고 조상들을 기억하며 차례 지내는 행위 자체를 금지하기 이전에 기독교 안에 들어온 혼합주의적 가치들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제사는 지내지 않지만 여전히 가부장적 권력을 지향하고, 예수 안에서의 죽음을 통한 부활이 아닌 물질적 풍요 속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하고, 물질적 탐욕 안에서 이 생의 자랑을 일삼는다면, 그 사람은 분명 우상숭배자이고, 조상 숭배자와 다를바가 없습니다.

기독교적 가치 안에서 조상제사 행위들을 재 조명하고, 긍정적인 부분들을 살려 기독교 문화로 바꿔 나간다며
불신 가족들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없애고, 선교의 도구로 더 귀하게 사용될 것입니다.

(짧은 시간에 쓴 글이라 두서가 없고, 내용도 빈약합니다. 그러나 전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은 전달 되었다고 믿습니다. ^^)

댓글 8개:

  1.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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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감사합니다 잘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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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너무 글이 좋네요 감사합니다!!! 새해복많이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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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작성자가 댓글을 삭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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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작성자가 댓글을 삭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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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제사는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을 바치어 정성을 나타냄 입니다. 죽은 사람의 영혼에게 음식을 바치고 정성을 나타내는 이유가 예의를 중시해서 라고 한다면 기독교사상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데요. 왜냐면 죽은 사람의 영혼이 떠다닐 수 없다고 우린 배우지 않나요? 그럼 의미없는것이잖아요. 제사라는게...'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는 말씀처럼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목적이 후손들이 조상들이 잘 봐줘서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인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게 생각치 않으시는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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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Orange n Green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행하는 일들 저변에는 언제나 더 큰 무의식적 전제들이 존재합니다. 제사 문제도 마찬가지지요. 실제로 제사를 드리는 꽤 많은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며 조상의 혼령이 그곳에 방문한다고 생각을 하지요. 하지만 그런 인식들의 밑바탕에서 그런 사고를 가능하게 지탱시켜주는 것은, 상징체계라는 구조물입니다. 쉽게 말해서 조상에 대한 예의와 감사, 두려움과 불안, 기대와 소망 등을 하나로 묶어서 표현해 주는 상징적 대체물이 '죽은 이의 혼령'이라는 것이지요.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은 '실제로' 그 혼령이 존재한다고 믿지만, 무의식적 전제들 속에서는 그 상징적 대체물 속에서 다양한 감정적 긴장들을 해소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상징적 이해가 전무한 상태에서 '실제'에 집착하면 할 수록 미신에 가까워 지는 것이고, 상징적 표현들을 이해해 가면서 '종교'화 되는 것이지요.
    죽은 이들의 혼령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혼령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이 의미 없는 행위가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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