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을 살았던 예수는 어떻게 '하나님'으로 고백되었을까?
제자들과 초기 교회는 어떻게 자신들이 믿고 따르던 예수를 '하나님'과 동등한 분으로 인식하게 되었을까?
이 글은 "하나님의 열심에 사로잡혀 있던 한 사람을 그의 제자들은 어떻게 신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나?" 하는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쉽게 말해 '예수의 신성'이 제자들에게 받아들여지게 된 과정을 간략하게 재구성해 보는 것입니다. (예수의 신성과 인성에 관한 논쟁이나, 삼위일체에 관한 것은 논외로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라는 문구는 예수를 당연히 신적 존재로 말하고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에서 밝혀지듯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신적존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회복할 '메시아'에 대한 다른 표현으로서, 하나님의 대리자인 '이스라엘의 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누군가를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렀을 때, 그 의미는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신적 존재로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메시아, 즉 정의와 평화를 실현시킬 '왕'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엄밀히 말해 논의의 출발점이 되지 못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 누구도 '하나님의 아들'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 2격'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논의를 '야훼'라는 이름에서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야훼를 부르던 이름 '아도나이'와 헬라어 표현인 '퀴리오스'에서(둘 모두 '주'라는 뜻), 예수께서 신적 존재로 고백된 경로를 찾아볼 것입니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은 '야훼'입니다. 개역성경에는 '여호와'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데, 구약학자들이 밝혀낸 '원래' 발음은 야훼입니다. 야훼가 여호와가 된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을 표현하는 이 단어의 모음이 손실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단어는 네 개의 자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음의 손실로 본래 발음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단어를 읽을 때 '주'라는 뜻의 아도나이로 대신 읽었습니다. 이후에 이 단어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본래의 자음 네 개에 '아도나이'의 모음을 가져다 붙여 읽은 것이 '여호와'입니다. 이것을 다시 히브리 언어구조를 중심으로 복원한 것이 '야훼'입니다.
그런데, 구약에 사용된 하나님의 이름, '야훼'에 약간의 긴장이 존재합니다. 성경에는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자신(히브리말로 '엘로힘')과 하나님의 이름인 '야훼'사이에 동일시와 비동일시의 긴장이 있습니다. 때론 같은 존재로, 때론 조금 다른 존재로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조금 더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지만, 일단 구약성경에서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야훼'가 하나님의 본질 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야훼는 하나님의 자기계시로서의 신적존재로 보입니다. 야훼는 곧 신적존재로서의 하나님이지만 하나님 자신과 완전히 동일시 되지는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야훼는 천사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창세기 18장에 나옵니다. 아브라함에게 사람처럼 보이는 천사 셋이 찾아왔는데, 16절 이하와 19장 1절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세 천사 중 한 천사가 '야훼'라는 자연스러운 추정이 가능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자신을 계시하실 때 사용하는 칭호가 '야훼'라는 말입니다.
다양한 암시들이 구약성경 곳곳에 나타나지만, 여기에서 상세하게 언급하는 것은 생략하고 야훼가 '천사로서의 하나님'으로 인식되었다는 신약성경의 가장 중요한 언급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도행전 7장 53절에서 스데반은, 모세에게 율법을 전해준 것이 '천사'였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구약성경에서 보다시피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분은 '야훼'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스데반은 그 야훼 하나님을 '천사'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요. 사실, 이는 구약성경에서 천사의 등장과 야훼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한 경계선 없이 혼재되어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 즉, 야훼하나님은 하나님의 본질 자체라기보다는 천사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에 더 가깝다는 의미입니다.
정리하자면, 야훼는 하나님이고 신적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본질 자체는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표현의 형태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미묘한 긴장 속에서 하나님은 '야훼 하나님'으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유대인들은 야훼 하나님을 '야훼'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모음이 상실된 이유도 있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대신 야훼 하나님을 부를 때 그들은 '아도나이' 즉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물론, 종이 상전을 부르던 것도 주님이고, 백성과 신하가 왕을 부를 때도 주님이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주님은 야훼 하나님을 향한 칭호였습니다. 하나님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알듯이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를 '주'로 고백했습니다. 여기에 문제의 복잡성과 혼란이 나타납니다. 제자들은 부활한 예수를 '주'와 '메시아'로 고백했는데, 예수를 향한 '주'라는 고백이 단순히 선생으로서의 '주'라는 의미를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초기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것은 예수께서 하나님과 신성을 교류하는 삼위일체의 '제 2격'으로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당시의 유대인들 중 '메시아'가 하나님과 신성을 교류하는 '신'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습니다. 메시아는 신이 아니라 왕이었습니다. 복음서의 많은 본문이 이를 적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즉, 메시야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궁극적이고 진정한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왕을 향해 제자들은 '주'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런데, 초기 기독교에서야훼 하나님을 향한 '주님'이라는 호칭이 예수를 향한 '주님'이라는 호칭으로 대체되어 버리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야훼를 주님이라고 부르던 것이 자연스럽게 예수에게로 넘어갔다는 말입니다.
이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구절이 사도행전 2장과 로마서 10장에 나오는 요엘의 예언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분명히 요엘의 예언 속에 등장하는 '주'는 야훼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로마서에서 그 구절을 정확하게 '주'이신 예수께 적용합니다. 사도행전도 같은 맥락안에 있습니다.
'주 야훼'께서 '주 예수'로 대체된 것인데, 이런 현상이 신약성경의 초기 기록들 가운데서 발견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주시다'라는 고백이 하나님의 신적 현현인 야훼라는 고백을 대체한 것입니다.
이 고백에는 정치적 함의, 즉 로마황제는 진정한 주가 아니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로마 황제가 아니라 예수께서 진정한 주시라는 이 고백입니다. 그리고 이 고백 안에는 구약 선지자들의 '야훼께서 왕이시다'라는 선포가 예수를 통해 성취되었음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즉, 야훼께서 왕이심이 곧 예수께서 왕 되심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우리는 히브리서 1장 4절 이하의 말씀을 분명하게 이해하게 됩니다. 예수를 소개하면서 히브리서 기자는 그가 '천사보다 더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천사를 통해 자신을 드러냈던 이름 '야훼'보다 더 아름다운 이름 '예수'를 의미하는 듯 합니다. 야훼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예수라는 이름 안에서 성취되고 완성된 것입니다.
야훼에서 예수라는 이름으로의 전환, 여기에 예수의 신성에 대한 열쇠가 있어 보입니다. 야훼라는 이름이 하나님 본질 자체와는 약간의 간격이 존재하지만, 야훼가 곧 하나님으로 표현되며 이 세상에 개입하셨던 것처럼, 야훼의 성취인 예수 이름은 하나님을 보여주는 새로운 존재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으로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곧 하나님입니다. 물론 예수는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동일하지 않습니다. 천사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 야훼를 하나님이라 부르지만 하나님의 본질과는 간격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야훼라는 이름이 곧 하나님이듯이 예수라는 이름도 곧 하나님입니다.
여기에서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새로운 문이 하나 열립니다. 하지만 그 논의는 다음으로 미루어 두고 빌립보서 2장에 있는 말씀만 언급해 보겠습니다.
빌립보서 2장 6절에서 바울은 예수를 가리켜 '하나님의 본체'라고 말합니다(사실, 이 본문은 바울의 고백이라기보다는 예수에 관한 전승을 바울이 인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서 '본체'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형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형체를 가진 천사를 통해 '야훼 하나님'으로 활동하셨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예수 또한 하나님의 형체로서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으며, 야훼가 하나님으로 표현되듯이 예수 또한 하나님으로 고백됨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을 드러내는 형체로서의 '주 야훼'가 초기 교회안에서 '주 예수'로 대치되면서 메시아 예수는 자연스럽게 '야훼'가 가지고 있던 신적 신분으로 인식이 되고 '하나님'으로 고백됩니다. 이제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드러내던 '야훼 하나님'의 방식에서 메시아를 통한 '예수 하나님'으로 자신을 표현하십니다. 이것이 초기교회가 그들의 유일신 신앙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된 경로로 추정됩니다.
자세히 공부해본 분야가 아니라 감히 댓글을 달자면 '주 야훼'가 '주 예수'로 대치되면서 신적 신분이 인식되었다고 보기엔 히브리어와 달리 헬라어에서 '주'라는 칭호가 굉장히 흔한 표현이었다는 점에서 조금 무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인 문득 드는군요. 물론 그냥 '주님'이라는 호칭과 '주 예수'라는 칭호는 다른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직관적인 느낌에 '주 야훼'를 '주 예수'로 대치하게 되는 상황은 신 인식을 생산했다기보다는 신 인식의 결과로 적용되어진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야훼가 하나님의 자기 표현이었다면 허타도가 얘기하는 최고의 중재자(?)였던가? 그 개념과 뭐가 다른 것이 되는 건가요?
답글삭제ㅎㅎ 나도 직관적 느낌을 근거로 쓴 글이라 상세한 논증을 하긴 좀 어려워요.
답글삭제내가 허타도 책을 많이 보질 않아서... 주 예수 그리스도 한 권 읽었는데, 머리에 특별히 남아 있는 건 없는 듯 하네요..ㅎㅎ
허타도가 최고의 중재자라고 표현했다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비슷할 것 같네요. 아무튼, 복음서나 사도행전을 보면, 특별히 율법과 관련해서 야훼가 천사와 동일시 되는 인상을 많이 받게 되죠. 그리고 구약 성서의 몇몇 부분에서도 야훼와 천사가 혼용된다는 느낌을 받아요.
이것이 야훼가 하나님 자신임과 동시에 자기 표현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에요.
그리고, 분명 신약성서에서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야훼'에 해당하는 성경 구절을 '예수'로 바꿔 고백했음을 보여주죠. 히브리어 헬라어에서 주 라는 칭호가 다른지는 좀 더 확인해 봐야겠지만, 근본적인 의미가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일단, 분명한 것 하나는 야훼에 대한 성경구절이 예수로 바뀌어 고백되었다는 점이고,
여기에서부터 추론하자면, 야훼가 예수로 대치될 수 있었던 것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야훼와 예수를 모두 '주'로 불렀다는 점이죠. 다른 더 적절한 이유는 찾기 어려울 것 같네요.
그리고 야훼가 예수로 대치될 수 있었던 다른 이유는, 야훼가 하나님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표현, 혹은 중재자?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제 추론입니다.
현재까지,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더 정확한 논증이 필요하겠지만, 큰 틀에서 보면 꽤 개연성이 있는 추론이라고 생각이 드네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