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글에는 언제나 '믿음, 소망, 사랑'이 같이 나타납니다. 바울이 이 단어들을 사용하는 것은 일상적 언어습관이 아닙니다. 바울은 매우 조심스럽게 이 단어들을 선택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바울은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단어들을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매우 소상히 밝혀줍니다. 특별히,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관통하고 있는 그림에는 '의로워짐과 구원'의 진정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 글은 그 의미들을 풀어 쓴 것입니다. 특별히 로마서 5장과 8장을 중심으로 의로워짐과 구원,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상관관계를 풀어봤습니다.
1.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롬5:1).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과 그렇지 않은 자를 나누실텐데, 믿음으로 그 판결이 '이미' 이루어졌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백성으로 판결이 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완료형입니다.
2. 여기에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믿음으로서(롬4:24) ‘율법의 행위’와 대조를 이루는 말입니다.
3. 율법의 행위란, '선을 행하는 삶의 방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으로서 자동적으로 얻게된 ‘외모’를 의미합니다. 유대인이라는 혈통으로 태어나, 부모에 의해 할례를 받고, 안식일에 회당에서 율법 낭독을 듣는 등의 ‘자동적으로 얻게 된 자격’을 의미합니다. 즉 율법의 행위란 '선행'이 아니라 ‘좋은 외모’를 말하는 것이지요.
4. ‘율법의 행위’에 반하는 ‘믿음’이란, 구원에 대한 확신이나 경건한 생활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율법이라는 자격에 반해 ‘아무 자격 없어도’ 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오직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믿음 하나만 있으면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5. 그러나 ‘의로워졌다는 판결문’은 그저 판결문일 뿐입니다. 아직 구체적인 집행이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온전한 구원을 바라며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가야 합니다(빌2:12). 이것이 ‘의로워졌다’는 말이 완료형으로 쓰이지만, ‘구원 받다’는 말이 종종 미래형으로 등장하는 이유입니다(롬5:9).
6. 우리의 구원, 구속은 이 시대의 마지막 날에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그 때까지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받았다’라는 로마서 8장 24절의 의미입니다. 소망으로 미래의 구원을 현재에 앞당겨 놓은 것입니다. 소망이라는 창문을 통해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7. 그러나 소망으로 말미암은 구원은 ‘고난과 인내’를 통해 완성됩니다(롬5:3-4; 8:18-24).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의롭다고 판결을 받은 것이 구원으로 곧장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며 만나는 모든 고난을 인내로 견뎌야 구원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가야 하는 것이지요.
8. 그래서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우리의 고백은, 강력한 소망의 확신으로 모든 고난과 유혹을 이겨낼 때에만 우리의 구원이 완성된다는 믿음의 선언인 것입니다.
9. 바울은 이 소망을 빌3:11-12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부활이라는 몸의 구속을 갈망하는데, 이미 얻은 것이 아니다. 온전히 이룬 것도 아니다. 오직 예수와의 연합을 위해 달려가는 것이다.”
10. 그래서 구원은 확신의 대상이 아니라 오직 소망의 대상이며, 인내의 경주를 통해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 인내의 경주가 없다면 구원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11.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이 보이지도 않는 소망을 붙잡을 수 있습니까? 그것이 사랑입니다.
12. 환난을 당하지만 굴하지 않고 인내의 경주를 달려가게 하는 이 소망을 헛되게 만들지 않는 것, 우리가 환난 중에도 이 소망을 붙들게 만드는 것이 바로,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부어주신 사랑입니다(롬5:5). 이 사랑의 힘이 우리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하며,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 좁은 길을 걸어가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게 붙들어 준다는 것이지요.
13. 그러면서 바울은 그 사랑이 어떤 것인지 너무도 감격적으로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해 죽으셨다. 의인을 위해 죽는 것이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해 죽는 사람이 가끔 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일 때에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 보이셨다.”
14. 우리 안에 이 사랑의 확증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오늘도 그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의 능력이 오늘도 온 피조물의 구속을 바라며(롬8:18-25) 인내의 경주를 하는 우리의 소망을 부끄럽지 않게 지탱해 줍니다.
15. 사랑은 만병통치약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모든 능력이 사랑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16. 그러나 '약'이 목적은 아닙니다. 약의 목적은 건강해 지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목적은 온 피조물이 구속함을 얻는 것이지요. 그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물 붓듯 부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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