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누가 봐도 예언자였다. 이는 복음서를 조금만 유심히 읽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예수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예언자라고 불렸다. 그 유명한 베드로의 대답 '주는 그리스이십니다'라는 답변 이전에 제자들은 '사람들이 주님을 예언자라고 부릅니다'라고 말했다.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예수의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했지만 무리가 예수를 예언자로 알기에 함부로 손을 대지 못했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군중과 제자들은 예수를 예언자로 이해했다.
타인뿐만 아니 예수 스스로도 자신을 예언자로 이해했음을 성서는 우리에게 보여준다. 자기를 배척하는 고향 사람들을 향해 '예언자가 자기집 이외에는 존경 받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예수는 종종 자신이 받을 박해를 말하면서 예언자들이 이미 받은 박해를 언급한다.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말하면 예언자가 예루살렘 밖에서 죽는 법이 없다 말하면 끝까지 그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다. 이런 예수의 언행들을 종합해보면 그가 예언자의 전통에 서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예수께서도 스스로를 예언자의 한 사람으로 생각했다.
예수는 스스로를 예언자의 전통에 서 있는 고독한 예언자로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 주변에 있는 제자들을 비롯한 군중들도 그를 예언자로 봤다. 그의 언사는 영락없이 예언자의 그것과 닮아 있었던 것이다. 예수는 철저하게 예언자의 모습이었다. 여기가 논의의 시작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언자를 예언자로 인식하는 가장 핵심적인 표지는 무엇이었을까? 어떤 특징적인 모습을 보고 '저 사람은 예언자다'라는 표지를 붙였을까? 예수에게는 어떤 특징이 있었기에 사람들은 예수를 예언자라고 부른 것일까?
예언자들에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일반적인 특징은 '하느님의 심판 선언과 회개의 촉구'였다. 예언자들의 메시지에는 일반적인 패턴이 드러나는데 심판의 선언과 회개의 촉구, 그리고 하느님의 회복에 대한 선포가 그것이다.
이런 패턴은 예수에게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 공간복음서는 예수의 첫 선포가 '회개하라'는 것이었음을 말한다. 예수께서도 회개를 촉구하셨다. 그 근거는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하기 때문이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자들은 하느님의 자녀가 될 것이라는 회복의 메시지를 선언하셨다. 누가 봐도 예언자들의 메시지, 그들의 행동양식을 빼닮았다. 예수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예언자를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심판 선언과 회복의 약속으로 이어지는 예언자들의 메시지를 추동했던 가장 근본적인 힘은 무엇이었나? 무엇때문에, 혹은 무엇을 바라고 예언자들은 자신들의 온 삶을 쏟아 부었나?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죽음까지도 불사하도록 힘을 주었나?
구약성서 예언자들의 글들을 읽으면 시대와 상황은 다르지만 근본적으로 흐르는 하나의 중요한 전제가 있다. 하느님과의 언약, 그리고 이스라엘의 회복이 그것이다. 어떤 예언자도 이 두 가지 대전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예언자들은 언제나 변함없이 하느님과의 언약을 기본 전제로 깔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비전은 이스라엘이 하느님과의 언약공동체로 온전하게 돌아오는 것, 즉 회개이다.
예수의 삶도 마찬가지다. 예언자였던 예수를 추동했던 가장 핵심적인 힘은, 하느님과의 언약이었다. 이스라엘이 하느님과 맺은 언약에 신실한 모습으로 새로워지는 것, 그것이 예수의 꿈이었다. 물론 예수께서는 제자들과의 마지막 자리에서 '새 언약'을 맺으신다. 하느님께서 새로운 언약을 맺으시고 새로운 백성 공동체를 시작하신다는 이 선언이 갖는 의미에 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근본적으로 예수께서 하느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이라는 큰 틀 안에서 자신의 삶을 살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예수께서는 다른 예언자들과 마찬가지로, 언약공동체로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자신의 삶을 드렸다. 하느님께서 왕으로 다스리는 하느님의 나라가 왔다라는 선언은, 단지 새로운 세상, 신세계, 천상의 나라가 열렸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방황이 종지부를 찍고, 하느님께서 자신의 정의로 다스리시는 온전한 이스라엘의 회복이 도래했다는 선언이다. 예수의 사역은 이 일에 집중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말해 예수의 관심은 세계선교가 아니다. 물론 예수의 말씀 중에 이방인에 대한 포용과 용납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예수의 주된 관심은 그의 예언자 전통을 따라 이스라엘의 회복과 언약 갱신이었다.
예수 안에서 우리는 예언자의 모습을 본다. 그의 메시지와 행동들 안에서 우리는 예언자들이 그토록 간절하게 부르짖었던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열망을 본다. 그리고 결국 예수는 예언자 전통을 따라, 하느님과의 언약 갱신을 실현시켰다. 그 안에서 참 이스라엘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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