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글에서 성경의 자기표현 언어로서의 상징에 관해 말했다.
그리고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천국, 지옥 등은 이런 상징적 언어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이 어떻게 성경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지, 특별히 이 글에서는 천국에 관한 문제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
천국은 어디에 있는가?
당신이 예수를 믿고 죽으면 가는 그 어떤 곳인가?
확실한가?
성경은 천국에 관해 뭐라고 말하고 있는가?
사실, 천국에 관한 문제는 이미 여러 책들과 학자들을 통해 보편적으로 알려진 부분이어서 특별히 새롭게 다루어야 할 내용이 없다.
그래도 한 번 더 설명해 보자.
하지만, 내가 정작 하고 싶은 말은 그 이후이다.
천국, 영어로 헤븐, 헬라어로 우라노이스 투 데우.
우리 말로 하면 '하늘 나라'이다.
도대체 정체가 뭐냐?
먼저, '천국' 이라는 단어를 성경 검색창에 넣어보라.
특이한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될 것인데 이 단어가 포함된 성경 구절 37개 중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마태복음에 모여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디모데후서이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천국이라는 단어는 철저하게 마태복음의 것이다. 마태복음을 제외하면 천국이라는 말은 오직 성경에서 한 곳 밖에 나오지 않는 셈이다.
이렇게 보면, 천국은 성경의 중심 개념이 아니다.
적어도, 현재 기독교의 모든 신앙 초점이 천국에 맞춰져 있는 것은 비성경적 현상이 된다.
그렇다면 천국이 마태복음에서만 사용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 마태복음과 유사한 마가복음, 누가복음의 상황은 어떤가?
마태복음과 병행되는 본문을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에서 찾아보면 너무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인데,
마태복음의 '천국' 이라는 단어와 완벽하게 동의어로 사용되는 용어가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등장한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이다. 마태복음은 하늘나라, 나머지는 하나님 나라.
둘이 같은 것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무엇이 더 원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가?
당연히 '하나님 나라'이다.
하나님 나라는 마가복음, 누가복음 뿐만 아니라 요한복음, 사도행전, 바울서신 등에서 지속적으로 나오지만
하늘나라는 마태복음 이외에는 단 한차례밖에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정리하면 이렇다.
신약성서는 지속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말한다. 그것이 신약성서의 핵심 개념이다.
그런데, 마태복음은 무슨 이유인지 하나님의 나라를 '하늘 나라'로 대체해서 사용했다.
마태복음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은 개역개정판 번역을 기준으로 할 때 두 번밖에 나오지 않는다.
헬라어 원문은 자세히 살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마태복음이 의도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하늘 나라', 혹은 '그 나라'로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마태복음 공동체는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공동체이다.
유대인들은 십계명의 조항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를 엄격하기 지키기 위해 '하나님' 이라는 호칭 사용하는 것을 기피한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나라' 대신에 '하늘 나라'를 사용했는데,
하늘은 하나님을 '상징'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제 하늘나라의 정체가 어느정도 밝혀졌다.
하늘 나라는 하늘에 있어서 하늘나라가 아니다.
하늘의 나라는 어떤 특정한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상징적 표현일 뿐이다.
만약, 성서가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가 죽어서 가는 곳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또 다른 저 세상이나 하늘 어딘가에 존재하는 나라를 의미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천국(이후로 '천국'은 전통적 개념, 즉 죽어서 가는 곳을 의미하는데 사용하겠다)은 성경적 기반을 잃어버린다.
천국에 대한 그런 이해 자체가 비성경적 개념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인가?
사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논의는 너무 포괄적이고 복잡해서 이렇다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한가지, 그 나라가 우리가 죽어서 가는 곳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나님 나라와 대립되는 개념은 '땅 나라', 성경의 표현대로 하면 '세상 나라'이다.
세상 나라는 세상의 왕들이 통치하는 나라이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이다.
성경은 세상 나라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들어온다고 말하고,
세상 나라가 하나님 나라 되는 것을 궁극적 비전으로 제시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오도록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있고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말한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켜 죽은 후에 가는 어떤 곳이라고 말한 곳이 없다.
다만, 약간의 혼란을 주는 표현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이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표현이 복음서에는 자주 나오는데
이 말이 우리가 죽어서 어딘가에 간다는 말로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 관한 구절들을 모두 종합해 보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다는 표현이고
우리가 하나님 나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가 사는 이 세상 나라에 임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회복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우리가 죽어서 그 어떤 곳에 간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런 개념을 인정한다면
죽어서 가는 또 다른 세계로서의 천국은 허상일 뿐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회복될 하나님의 통치로 이해하면서
죽으면 천국에 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 죽으면 가게 된다는,
황금길과 온갖 보석으로 치장된 그런 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곳은, 천국이라는 말이 가진 상징성을 잃어버리고 문자가 실재로 전환된 허상일 뿐이다.
황금, 보석 등은 하나님의 통치가 얼마나 아름답고 영광스러운가 하는 것에 대한 상징일 뿐이다.
아름다우신 하나님 앞에서 황금이나 보석이 무슨 가치가 있는가?
하나님 앞에 가서도 황금이나 보석에 가치를 두고 있다면, 그 얼마나 천박한 일인가?
서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이다.
성서학의 발달과 함께,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알아가고 있다.
천국이 하나님 나라의 다른 표현이란 것도 잘 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어떤 곳이 아니란 것도 잘 안다.
그런데, 여전히 죽어서 가는 어떤 장소로서의 천국이라는 허상을 버리지 못한다.
나는 이런 이중적 태도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퇴색시킨다고 생각한다.
'천국' 이라는 허상을 버리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바로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천국이라는 허상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뒤통수를 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의 핵심은 천국이 아니라 부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경은 죽음 이후에 관하여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다음 글에서 다루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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