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지옥 문제는 교계에서 워낙 민감한 문제라 좀 걱적이 됩니다.
'천국'이 여러분이 생각하던 그런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보다
'지옥'이 여러분의 생각과는 다른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위험합니다.
지옥에 대해 병적으로 집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현상이 잘 이해도 되지 않고, 매우 병적인 증상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어쩌겠습니까,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상당히 오랜 동안 지옥이라는 공포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마음 깊은 곳엔 언제나 지옥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생각을 넣어준 사람들 다 용서했지만 참 나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지옥에 대한 공포를 먼저, 강하게 심어줬으니 말입니다.
저는 다음 세 가지 질문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써 보려고 합니다.
첫째, 지옥은 실재로 존재하는가?
둘째, 실재로 존재한다면 그곳은 어떤 곳일까?
셋째, 지옥이 실재하는 장소를 의미하지 않는다면, 성경에서 지옥에 관해 말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미리 말씀드리자면, 제 글은 세 번째 질문을 중점적으로 다루게 될겁니다.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이리 저리 둘러가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지옥' 이라는 말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지옥' 하면 무엇이 떠오릅니까?
성경은 지옥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사람들이 상상하는대로 지옥은 그렇게 무시무시한 곳일까요?
지옥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불입니다.
성경에서도 지옥은 많은 경우 불과 함께 등장을 합니다. '지옥불'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지옥은 불이 있는 곳일까요? 다른 많은 고통이 있을텐데, 왜 하필이면 불일까요?
이유는 매우 간단합니다.
그 이유를 간략하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신약성서에서 우리말로 '지옥' 이라고 번역된 헬라말은 '게헨나' 라고 읽습니다.
그런데 이 '게헨나' 라는 단어의 근본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힌놈의 골짜기'입니다.
힌놈의 골짜기를 헬라어로 음역한 것이 바로 '게헨나'인 것이지요.
그래서 지옥이라는 말은 구약 성경의 '힌놈의 골짜기'를 헬라어로 음역한 같은 말입니다.
따라서, 신약성서에서 사용된 '지옥' 이라는 말은 일차적으로 구약성서에 나오는 '힌놈의 골짜기'로 읽혀지는 것이 옳습니다.
구약성경에는 힌놈의 골짜기가 여러 차례 등장을 하는데요,
가장 강렬한 이미지를 남기는 언급은 예레미야 19장 6절에 있는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것입니다.
정확히는 힌놈의 골짜기가 아니라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되어 있는데요,
이 골짜기가 죽음의 골짜기로 불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과 함께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힌놈의 골짜기, 게헨나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장소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게헨나는 예루살렘 남서쪽에 있던 골짜기인데요,
예수 당시에 쓰레기 소각장으로 사용되던 곳입니다.
그래서 이곳에는 늘 불길이 끊이지 않았고, 타다 남은 동물들의 사체를 먹기 위해 야생동물들이 모여들어 울음 소리를 내던 곳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께서 몇 차례 이 '게헨나'를 언급하시는 것을 보게됩니다.
복음서에 '게헨나'가 사용된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마태복음 5장 22절 29절 30절
마태복음 10장 28절
마태복음 18장 9절
마태복음 23장 15절 33절
마가복음 9장 43절 45절 47절
누가복음 12장 5절
모두 예수께서 언급하신 것으로, 지옥 혹은 지옥불에 들어가는 것을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예수께서 '게헨나의 불'을 말씀하실 때, 사람들은 게헨나, 즉 힌놈의 골짜기에서 타오르는 불을 생각했을 것이고 그곳에서 울부짖는 동물들의 울음 소리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말씀하시면서, 사람들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불타는 쓰레기장' 곧 게헨나(지옥)라는 상징적 장소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예수께서 종종 언급하신 지옥은 불신영혼들이 사후에 가는 곳이 아닙니다. 그것은 조금도 성경의 지지를 받지 못합니다.
지옥, 게헨나는 예루살렘 남서쪽에 있던 골짜기로, 당시 쓰레게 소각장으로 사용되던 곳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말씀하시면서, 게헨나라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상징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게헨나'를 지옥으로 번역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지옥' 하면 사후 영혼들이 고통을 받는 곳이라는 개념이 누구에게나 강하게 깔려 있는데요,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은 이런 지옥이 아니라 '게헨나' 라는 불타는 쓰레기장이었고,
그것은 단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상징일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게헨나는 지옥으로 번역될 것이 아니라, '게헨나' 자체로 쓰던지, 아니면 구약성경의 이름을 빌어 '힌놈의 골짜기'로 번역을 하는 것이 옳습니다.
추가로 말씀드리면,
'게헨나'가 복음서 이외에 신약성서에서 한 곳 더 나옵니다.
야고보서 3장 6절인데요, 말이 얼마나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는가 하는 말의 위력을 말하면서
'혀는 불이다', '그 불은 게헨나 불에서 나온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게헨나는 '불타는 쓰레기장'이라는 상징으로 사용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가 친유대적 서신이었고, 그래서 야고보서의 독자들은 대부분 '게헨나'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상징이 사용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신약성서에는 '지옥'으로 번역된 또 다른 단어들이 나옵니다.
베드로후서 2장 4절에서 지옥으로 번역한 '타르타루스'입니다.
이 단어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단어인데요, 만물의 근원으로 숭배되던 가이아가 낳은 신들을 가두어 두는 지하 감옥이 바로 '타르타루스'입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베드로후서 저자는 죄 지은 천사들을 가두어 두는 감옥으로서 '타이타루스'를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가 비교적 후대에 쓰여진 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베드로후서의 저자가 그리스 신화나 그리스 문화에 친숙한 사람이었고
저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내용을 빌어
천사들이라 할지라도 범죄하면 하나님께서 지하감옥에 가두어 두시는 것처럼, 범죄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지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고, 하나님의 심판을 설명하기 위한 상징으로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약성서에서 '지옥'이라고 번역되는 단어가 하나 더 있습니다.
개역개정에서는 '음부' 라고 번역을 했고, 표준새번역에서는 '지옥'이라는 번역을 주로 사용한 '하데스'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지옥, 음부, 죽음, 사망 등등으로 번역이 되는데요,
이 단어가 이렇게 다양하게 번역이 되는 이유는 이 단어가 히브리 단어 '스올'의 헬라 번역어이고,
구약성서에 나오는 '스올'이라는 말의 의미가 포괄적이어서 정확히 한 단어로 바꾸기거 어렵기 때문입니다.
구약성서에서 '스올'은 죽은 자들이 가는 곳입니다.
물론 이 개념은 지금처럼 죽은 자들이 새로운 곳으로 이주한다는 개념이 아니고
땅 속 깊은 곳에 묻혀버린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구약성서에는 선한 자와 악한 자 모두가 죽으면 스올로 갑니다.
그래서 스올은 장소의 개념이라기 보다는 '죽음', 혹은 '죽음의 권세'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지옥 혹은 음부로 번역되는 '하데스'는 특정 장소라기 보다는 죽음의 권세를 의미하는 것이고 죽음으로 말미암은 멸망이라는 인간의 실존을 의미하는 단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에서는 호세아 13장을 인용해서 '죽음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말하며,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와 그 부활에 참여하게 될 성도의 영광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이상으로 '지옥'으로 번역되는 단어들, 게헨나, 타르타루스, 하데스에 관하여 살폈습니다.
요약하자면,
주류 기독교에서 상상하는 지옥, 불신 영혼들이 사후에 고통을 받는 그런 지옥은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지옥이라는 단어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상징적 도구로 사용되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지옥이라는 번역은 다른 말들로 고쳐지는 것이 옳다고 여겨집니다.
지옥과 관련하여 다루어야 할 본문들이 몇몇 더 있지만 여기에서는 핵심적인 것들만 다루는 것에 만족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 언급하고 이번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인식에 관한 부분인데요,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옥을 부정하면 큰일 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지옥을 부정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심판을 부정하는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옥을 사수해야 하고, 지옥을 공격하는 모든 교리들을 저주하며 저항합니다.
심리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할 말이 꽤 있습니다만,
여기에서는 인식의 오류만을 언급하겠습니다.
그들에게 지옥=하나님의 심판 이라는 상호 필요충분조건이 존재하는 듯 합니다.
그래서 지옥을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생겨나는 것이지요.
하지만 지옥이 곧 하나님의 심판은 아닙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합니다.
잘못된 권력과 부자들과 악을 행하는 자들, 절제하지 않고 자신의 탐욕을 위해 사는 자들, 궁극적으로는 이 모든 권세를 잡은 죽음의 권세 '하데스'가 심판 받을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매우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하지만, 지옥(사실 이렇게 말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은 이런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상징일 뿐이지, 실재로 존재하는 장소는 아닙니다.
따라서, 지옥이라는 장소를 실재한다고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지옥을 실재의 장소로 제한해 두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을 싸구려 3류 소설로 만들버리는 부작용을 낳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바르게 선포해야 합니다.
그 심판이 무엇인지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지옥이라는 괴물을 처형시켜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오히려 지옥이라는 괴물이 하나님의 심판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제가, 천국과 지옥이라는 전통적 개념이 예수 그리스도의 뒤통수를 치고 있다고 여기는 이유입니다.
지옥에 관한 내용은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천국과 지옥 그리고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논의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구원' 에 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구원의 의미를 찾다보면, 십자가와 부활이 왜 기독교 복음의 핵심인지를 알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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