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소개

안녕하세요 박성장입니다. 진심으로 반갑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하늘을 보며, 하늘의 뜻을 생각하며 오늘도 힘 내시기 바랍니다.

2011년 4월 20일 수요일

기도편지

기도제목을 요청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만들어봤습니다.

저의 변함없는 기도제목은 '정의롭고, 아름답고,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이 카드 보시는 분들은 함께 기도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

2011년 4월 16일 토요일

'내 이름은 칸'

"내 이름은 칸이고, 난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대사입니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주인공이 이 말을 미국 대통령에게 전하기 위해 대통령을 일정을 찾아 다니는 것이 전체적 이야기지만,

그 안에서 왜 그 말을 전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말이 담고 있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영화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이슬람과 힌두의 갈등, 테러, 폭력 속에서

주인공은 어머니의 위대한 가르침을 받습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만 존재한다. 좋은 행동을 하는 좋은 사람과 나쁜 행동을 하는 나쁜 사람만 있다. 종교나 인종은 아무것도 아니다."

자폐증을 앓는 파키스탄 이슬람 청년이 미국에 정착해 힌두여성과 결혼해 행복한 삶을 살다가

911 이후 감당하기 어려운 종교적, 인종적 박해를 겪으며 어머니의 위대한 가르침을 실행해 나가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그려집니다.

기독교 보수주의자 입장에서 이 영화는 불편할 수 있습니다. 이슬람을 비교적 아름답게 그리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요즘같이 이슬람에 민감한 때에는 더욱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지 이슬람이 아니라 종교 전반을 다루고 있습니다.

어느 종교에나 싸우기 좋아하고 폭력을 정당화 하려는 근본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이슬람에도 있고 힌두에도 있고 기독교에도 있습니다.

그들은 늘 싸우며, 적개심을 가지고 폭력 조차도 자신들의 신념 아래 정당화 합니다. 기독교인들도, 모슬렘도, 힌두인도 그렇게 합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종교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지요. 기독교도, 이슬람도, 힌두교도 그렇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 특별한 의미를 두는 이유는 특정 종교에 대한 편견 없이 모든 종교를 동일한 기준에 의해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좋아하는 방식인 '무조건 내 편들기' 하지 않고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지요.

기존의 인도영화 같지 않은 인도 영화... 당신 가슴에도 깊은 감동으로 남았으면 합니다.^^

2011년 4월 9일 토요일

문을 열고


May 16, 2007 by Rev. Park


문턱 하나 넘는 것이 그리도 어려워

그 오랜 시간을 갇혀 있었나보다

빼꼼히 열린 문틈 사이로 슬그머니 번지는 햇살이

그렇게나 두려웠었나보다

2011년 4월 6일 수요일

급물살 타고 있는 '한기총 해체운동'

서울대 손봉호 교수님이 한기총 해체를 위해 적극적으로 일하겠다고 발언 한 이후,
한기총 해체를 요청하는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지구촌교회 목회를 마치고 은퇴하신 이동원목사님도 한기총 해체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월드비전, SFC 등이 탈퇴를 선언했습니다.

이런 흐름을 타고 한국일보 오미환기자 mhoh@hk.co.kr가 기독교의 문제를 진단하는 기사를 썼네요..
때론, 외부의 시선이 더 정확하다 싶을때가 있습니다.

기사를 바로 블로그 할 수 있으면 좋은데, 그런 서비스가 아직 없네요.
출처 밝히고 올려 봅니다.

------------------------------------------------------------------------------------------------------------

보수 개신교계 연합체인 한기총 해체를 촉구하는 기독교 시민단체 회원들이 16일 한기총 사무실이 있는 한국기독교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교회개혁연대 제공

2011년 4월 3일 일요일

목사는 성직자인가?

기독공보 논설위원인 정릉교회 박은호목사의 칼럼에서 박은호목사께서 인용한 부분을 재인용해 봅니다.

"개신교가 '로마천주교회의 교황무오설'을 비성경적이라고 비판하지만 로마천주교회는 교황 한 사람에게만 무오설을 적용할 뿐 모든 사제들이, 모든 본당신부들이 언제나 옳다고 강변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신교회는 사실상 개교회마다, 개교회의 목회자들이 제각기 자신의 무오설을 주장하고 있다" (기독공보 3월12일 칼럼에서 재인용)

개신교가 사회 정치적 권력과 결탁해 교회성장을 이룩해 오면서 교회는 또 다른 하나의 큰 사회적 권력이 되었습니다. 큰 교회에는 정치인들까지 찾아와서 고개를 숙이고 갑니다. 얼마 전 청와대 조찬기도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무릎을 꿇은 것이 정치가 종교에 굴복한 것 아니냐는 논쟁으로 비화될 정도로 종교는 막대한 권력이 되었습니다(사람들 눈에 개신교가 권력으로 느껴지지 않았다면 이런 논쟁은 아마도 없었을 것입니다).

종교가 권력이 되면 당연히 종교의 대표성을 띄고 있는 종교지도자, (개신교에서는) 목사가 권력의 핵심인물이 됩니다. 특별히 성도를 많이 거느리고 있는 교회에서는 더욱 그렇지요. 물론 개중에는 겸손하게 사명을 잘 감당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지만 큰 교회 목사라는 것 자체가 권력이 되는 요즘입니다.

그래서 최근, '목사가 성직이냐?' 라는 내용의 발언이 개혁을 외치는 무리에서 자주 들려옵니다. 저도 종종 이 논쟁에 참여하기도 하구요. 그런데 이 논쟁에서 저는 늘 외롭습니다. 대부분의 개혁적 인사들과 달리 저는 목사가 여전히 성직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2011년 4월 1일 금요일

얼굴에 책임지며 살기

나이 40이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어느 유명한 분이 말했었죠.

이사짐 정리를 하며 책상 서랍에 있던 옛날 증명사진을 우연히 보게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앨범 만들 때 찍었던 사진하고 대학교 1학년 여권 만들 때 찍었던 사진입니다.
정말 촌티의 종결판입니다. ^^


그런데 이 사진을 보면서, 내가 어릴 때 이렇게 4가지(?)가 없게 생겼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굴에 거만함과 고집이 여기 저기 묻어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시절 얼마나 많은 편견과 이기심에 사로잡혀 감옥같은 삶을 살았었는지 지나온 과거의 나 자신이 안쓰럽습니다.
마음의 태도와 가치관이 얼굴에 그대로 묻어나는 듯 거칠고 외로운 모습입니다.

저에게 20대의 삶은 끊임없는 갈등과 변화, 도전과 실패, 탈피와 또 다른 속박의 연속이었습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많은 갈등과 방황을 통과하며 생각도 변하고 마음도 변하고 세상을 보는 눈도 변했습니다.
20대 초반의 초조함과 두려움, 잔뜩 쌓아놓은 방어의 벽들, 편견과 독단, 이기심과 열등감들이 서서히 극복되었습니다.
10년 쯤 지나 찍은 사진은 많이 편안해 보이네요. ^^



물론 사람이 금새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참 많은 시간이 걸리지요.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가치관, 즉 인생의 방향을 따라 진행하기 때문에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삶이 변하게 되지요.
그래서 조급할 필요가 조금도 없습니다. ^^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고, 예수를 닮기 위해 애 쓰는 이유, 바로 이것입니다.
당장 우리 삶에 예수의 흔적이 나타나지 않아도, 무엇이 옳은지 알고 있다면 서서히 변해갈 것입니다.

우리의 얼굴도 그렇게 되어야겠지요.
보톡스 좀 맞고, 칼도 가끔 대주고, 좋은 화장품으로 가꿔서가 아니라, 내면의 빛이 나타나 아름다운 얼굴이 되어야겠지요.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는 삶을 살아야겠지요.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