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쓸모 있는 교회
이웃과 지역사회에 쓸모있는 교회가 되고 싶었다. 교회가 지역사회에 스며들고 말이 아닌 삶으로 예수를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경험했던 교회 조직에서 이것은 꿈같은 얘기였다.
교회의 세가 커지고 헌금액수가 늘고 번듯한 건물이 생기면, 그리고 교회에 의지가 있으면 이런 저런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사회와 교류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물론 한계는 있지만 지역에 쓸모있는 일들도 제법 할 수 있다. 그런 의지를 가진 교회가 얼마 없는 것이 서글프긴 하지만 말이다.
문제는 개척교회다. 도시를 빼곡히 채운 네온십자가, 그 십자가 아래 개척교회들이 있다. 개척교회는 그 네온십자가를 지탱하고 서 있기에도 버겁다. 십자가 아래 짓눌려 이웃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는 커녕 사회적 잉여를 벗어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개척교회 목사들의 낮은 자존감과 시간 죽이기는 말할 것도 없다.
2017년 3월 23일 목요일
2017년 3월 22일 수요일
길벗교회 이야기 7
7. 그러니까, 교회는 목사 게 아니라니까
부교역자 생활을 제법 오래했다. 여러 교회를 거쳤는데 내게 썩 잘 맞는 옷은 아니었지만 제법 괜찮은 옷들이었다. 누구나 아는 유명 브랜드도 있었고 중소기업 제품도, 신생회사 제품도 있었다. 돌아보니 다양한 옷을 입어볼 수 있는 경험이었고, 내게 어울리지 않는 옷이 무엇인지도 깨달을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유독 기억에 남는 교회가 있는데, 내겐 최악의 교회였다. 교회 자체나 교우들이 싫었던 건 아니다. 내게 그 교회가 최악이 된 이유는 전적으로 담임목사의 어리석음과 아집이다. 여러 담임목사를 겪으며 당시에 느꼈던 불편함과 참담함은 대부분 시간이 지나며 사라졌다. 그런데 유독 그 목사에 대한 마음은 바뀌질 않는다. 여전히 그 목사를 형용하는 내 평가는 어리석음과 아집이다.
부교역자 생활을 제법 오래했다. 여러 교회를 거쳤는데 내게 썩 잘 맞는 옷은 아니었지만 제법 괜찮은 옷들이었다. 누구나 아는 유명 브랜드도 있었고 중소기업 제품도, 신생회사 제품도 있었다. 돌아보니 다양한 옷을 입어볼 수 있는 경험이었고, 내게 어울리지 않는 옷이 무엇인지도 깨달을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유독 기억에 남는 교회가 있는데, 내겐 최악의 교회였다. 교회 자체나 교우들이 싫었던 건 아니다. 내게 그 교회가 최악이 된 이유는 전적으로 담임목사의 어리석음과 아집이다. 여러 담임목사를 겪으며 당시에 느꼈던 불편함과 참담함은 대부분 시간이 지나며 사라졌다. 그런데 유독 그 목사에 대한 마음은 바뀌질 않는다. 여전히 그 목사를 형용하는 내 평가는 어리석음과 아집이다.
길벗교회 이야기 6
6. 나는 카스테라가 싫어요
세계 4대 기독교 종파 중 유일학게 개신교만 성만찬 없는 예배를 드린다. 정교회, 로마가톨릭, 성공회 모두 매 주일 성찬례를 행하지만 유독 개신교만은 성만찬이 없다. (크게보면 성공회도 개신교의 한 분파로 볼 수 있지만 개신교와는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으니 구분해 보았다.)
개신교의 성만찬은 자주 하는 곳이 한 달에 1회정도, 나머지는 연 4회 혹은 2회 정도다. 개신교 예배에서 성만찬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설교가 차지했다. 결국 과도한 설교 집착으로 인한 목사의 설교능력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되었다.
세계 4대 기독교 종파 중 유일학게 개신교만 성만찬 없는 예배를 드린다. 정교회, 로마가톨릭, 성공회 모두 매 주일 성찬례를 행하지만 유독 개신교만은 성만찬이 없다. (크게보면 성공회도 개신교의 한 분파로 볼 수 있지만 개신교와는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으니 구분해 보았다.)
개신교의 성만찬은 자주 하는 곳이 한 달에 1회정도, 나머지는 연 4회 혹은 2회 정도다. 개신교 예배에서 성만찬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설교가 차지했다. 결국 과도한 설교 집착으로 인한 목사의 설교능력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되었다.
2017년 3월 18일 토요일
길벗교회 이야기 5
5. 일요일 오전 11시를 숭배하는 사람들
당연히 예배 시간은 일요일 오전 11시였다. 그 시간이 가장 편리하다고 느꼈다. 예배 마치고 같이 밥 먹기도 좋고, 오후엔 다른 일들을 볼 수 있어 괜찮겠다 싶었다. 11시를 고집한 건 아니지만 딱히 거부할 이유도 없었다.
예전에 중고등 학생들 데리고 대학교 견학차 미국 LA에 간 적이 있다. 주일에 두 곳의 교회를 방문했는데 그 중 하나가 한참 붐처럼 일어나고 있던 이머징처지 흐름에 있던 교회였다. 일요일 오후 5시에 공장처럼 사용하던 큰 창고에 모여 빵과 포도주를 나누고 예배를 드렸다. 포도주를 병채로 꺼내놓고 음식은 포트락 방식으로 리더급 되는 사람들이 5-6가지를 준비해왔는데 꽤나 인상깊게 경험했던 기억이 있다.
그 기억 때문인지 저녁 5시쯤 모이는 것도 좋겠다 생각을 했었는데, 일요일 저녁가지 모이면 다음날 피곤하다는 아내의 반대도 있었고 굳이 일요일 오전을 포기할 이유도 없어 11시에 예배를 드렸다.
변수가 생겼다. 교회를 시작하고 두달쯤 지나 세브란스병원 원목실에 하프타임 목사로 일을 시작했다. 원목실 주관으로 매주 일요일 오전 환우를 위한 예배가 드려지는데 한 달에 한 번은 그 예배에 참석해 예배를 돕는 일을 해야 했다. 갓 부임한 신입 목사가 거부하기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예배시간을 2시로 옮겼다. 시간을 바꾼데는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응원차 예배 참석하시는 분들이 소속교회 예배를 드리고 넘어오는데 오후 시간이 더 편리했다. 그 외 다른 큰 이유는 없었다.
시간을 옮기고 나서 생각해보니 참 잘 했다 싶었다. 현실적인 이유를 떠나 한국 개신교 안에서 '일요일 오전 11시'가 갖는 상징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종교적 규율에서의 자유와 쉼을 추구하는 우리 교회의 가치에 더 잘 들어맞았다.
'일주일의 시간 중 우상숭배가 가장 극심한 때는 일요일 오전 11시다'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대부분의 교회가 같은 시간에 모여 저마다의 하느님을 찾는다. 같은 하느님이라고 말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다른 경우도 많다. 어쩌면 많은 교인들이 예수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더욱이 11시 예배를 '대예배'라 칭하며 우상시한다. 다른 시간에 드리는 예배는 부수적인 것으로 하찮게 여기는 마음이 한국 개신교 안에 뿌리 깊다. 간혹 길벗교회에 방문하시는 분들 중 당연히 11시 예배일 것이라 생각하고 10시 좀 넘어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다. 당연히 11시라는 뿌리 깊은 도식이 자리잡고 있음을 느끼곤 한다.
변화? 별거 없다. 당연하다 여기는 것들에 물음표를 던져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본질이 아닌 것들이 본질의 자리에 올라 주인 노릇 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것, 그것이 변화다.
하나님인지 하느님인지, 성경인지 성서인지, 성서 번역은 어떠한지, 성전인지 예배당인지 별 것 아닌 하찮은 문제들이지만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
우리는 계속 질문한다. 그리고 질문하는 사람들을 환영한다. 물론 질문은 때로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생각해야 하고 의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질문만이 우리를 본질로 이끈다. 질문을 포기한 껍데기는 가라.
당연히 예배 시간은 일요일 오전 11시였다. 그 시간이 가장 편리하다고 느꼈다. 예배 마치고 같이 밥 먹기도 좋고, 오후엔 다른 일들을 볼 수 있어 괜찮겠다 싶었다. 11시를 고집한 건 아니지만 딱히 거부할 이유도 없었다.
예전에 중고등 학생들 데리고 대학교 견학차 미국 LA에 간 적이 있다. 주일에 두 곳의 교회를 방문했는데 그 중 하나가 한참 붐처럼 일어나고 있던 이머징처지 흐름에 있던 교회였다. 일요일 오후 5시에 공장처럼 사용하던 큰 창고에 모여 빵과 포도주를 나누고 예배를 드렸다. 포도주를 병채로 꺼내놓고 음식은 포트락 방식으로 리더급 되는 사람들이 5-6가지를 준비해왔는데 꽤나 인상깊게 경험했던 기억이 있다.
그 기억 때문인지 저녁 5시쯤 모이는 것도 좋겠다 생각을 했었는데, 일요일 저녁가지 모이면 다음날 피곤하다는 아내의 반대도 있었고 굳이 일요일 오전을 포기할 이유도 없어 11시에 예배를 드렸다.
변수가 생겼다. 교회를 시작하고 두달쯤 지나 세브란스병원 원목실에 하프타임 목사로 일을 시작했다. 원목실 주관으로 매주 일요일 오전 환우를 위한 예배가 드려지는데 한 달에 한 번은 그 예배에 참석해 예배를 돕는 일을 해야 했다. 갓 부임한 신입 목사가 거부하기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예배시간을 2시로 옮겼다. 시간을 바꾼데는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응원차 예배 참석하시는 분들이 소속교회 예배를 드리고 넘어오는데 오후 시간이 더 편리했다. 그 외 다른 큰 이유는 없었다.
시간을 옮기고 나서 생각해보니 참 잘 했다 싶었다. 현실적인 이유를 떠나 한국 개신교 안에서 '일요일 오전 11시'가 갖는 상징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종교적 규율에서의 자유와 쉼을 추구하는 우리 교회의 가치에 더 잘 들어맞았다.
'일주일의 시간 중 우상숭배가 가장 극심한 때는 일요일 오전 11시다'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대부분의 교회가 같은 시간에 모여 저마다의 하느님을 찾는다. 같은 하느님이라고 말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다른 경우도 많다. 어쩌면 많은 교인들이 예수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더욱이 11시 예배를 '대예배'라 칭하며 우상시한다. 다른 시간에 드리는 예배는 부수적인 것으로 하찮게 여기는 마음이 한국 개신교 안에 뿌리 깊다. 간혹 길벗교회에 방문하시는 분들 중 당연히 11시 예배일 것이라 생각하고 10시 좀 넘어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다. 당연히 11시라는 뿌리 깊은 도식이 자리잡고 있음을 느끼곤 한다.
변화? 별거 없다. 당연하다 여기는 것들에 물음표를 던져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본질이 아닌 것들이 본질의 자리에 올라 주인 노릇 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것, 그것이 변화다.
하나님인지 하느님인지, 성경인지 성서인지, 성서 번역은 어떠한지, 성전인지 예배당인지 별 것 아닌 하찮은 문제들이지만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
우리는 계속 질문한다. 그리고 질문하는 사람들을 환영한다. 물론 질문은 때로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생각해야 하고 의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질문만이 우리를 본질로 이끈다. 질문을 포기한 껍데기는 가라.
2017년 3월 17일 금요일
길벗교회 이야기 4
4. 1호 교인의 탄생
난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크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공짜로 얻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탓도 있지만 거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쉽게 내 속내를 내비치지 못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거나 제안을 할 때는 상황을 잘 살피고 성사 되겠다 싶은 얘기만 꺼낸다. 아니면 미리 나름의 상황 설정 후 말을 꺼낸다.
교회를 시작하며 마음 속에는 '이 사람이 함께 해 주면 좋겠다' 싶은 분들이 여러 명 있었는데 아무에게도 함께하자는 얘기를 대놓고 하지 못했다. 얘기 해보고 안 되면 말고, 이게 잘 안 된 탓이다.
난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크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공짜로 얻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탓도 있지만 거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쉽게 내 속내를 내비치지 못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거나 제안을 할 때는 상황을 잘 살피고 성사 되겠다 싶은 얘기만 꺼낸다. 아니면 미리 나름의 상황 설정 후 말을 꺼낸다.
교회를 시작하며 마음 속에는 '이 사람이 함께 해 주면 좋겠다' 싶은 분들이 여러 명 있었는데 아무에게도 함께하자는 얘기를 대놓고 하지 못했다. 얘기 해보고 안 되면 말고, 이게 잘 안 된 탓이다.
2017년 3월 16일 목요일
길벗교회 이야기 3
3. 목사병
교육전도사로 교회 일을 했던 기간 빼고 전임사역자로 7년을 일했다. 그 사이 나도 모르게 익숙해진 것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예배다.
새벽기도회를 제외하고도 7년간 거의 쉼 없이 주일예배, 오후/저녁예배, 수요기도회, 금요기도회에 참석했다. 교육부서를 맡을 때는 부서 예배도 추가다. 새벽기도회를 포함에 일주일에 10여 차례 예배와 기도회에 참여하고 사회를 보고 설교를 했다. 그런 삶이 좋진 않았으나 난 자연스럽게 거기에 익숙해졌다.
길벗교회를 시작하면서 공식적 예배를 주일에만 한 번 드리기로 했다. 지나치게 많은 예배가 성도들의 건강한 삶을 빼앗는다 느꼈기 때문이다. 예배당이나 주일에 갇힌 신앙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성전이고 모든 날이 주님의 날임을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2017년 3월 15일 수요일
길벗교회 이야기 2
2. 교양 있는 척 하는 사람 출입금지
가정교회를 지향한 건 아니었다. 처음엔 몇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식당이나 카페, 학원 등 주일에만 예배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을 빌리는 것이 최상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들이 현지인 교회를 빌려 사용하듯이 다른 교회 공간을 빌려 쓰는 것도 생각해 봤다. 그것도 안 되면 집에서 시작 하겠다 마음먹었다.
헌데 타이밍이 썩 좋지 못했다. 괌에서 부목사로 일하다 귀국 하자마자 교회를 시작하는 터라 아는 사람도 많지 않고 도움 받을 곳도 별로 없었다. 인천에 터를 잡고 예배 공간으로 사용할만한 곳을 몇 군데 알아보다가 포기했다. 결국 예배는 우리 집에서 시작되었다. 5층짜리 오래된 아파트 5층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이 강제 운동을 해야 하는 20평 조금 안 되는 공간에서 길벗교회가 시작됐다.
길벗교회 이야기 1
1. 목사들의 말잔치, 창립예배는 없다
남들 다 하는 창립예배는 없었다. 2013년 8월 11일 첫 예배를 드린 이후 사람들을 초대하고 노회의 선배 목사들을 불러 진행하는 창립예배는 하지 않았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예배는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일상처럼 진행됐다.
보통 창립예배는 개척교회가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다. 목사 주도로 개척되는 교회의 경우 목사의 직전교회 및 소속 노회 교회들이 창립예배를 통해 후원금을 건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목사는 창립예배를 두 번 하기도 한다. 자신이 발 담그고 있는 관계망의 색이 나뉠 경우 그들을 따로 초대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더 많은 개척자금을 모금하기도 한다.
창립예배에는 순수하게 신앙적 동기도 작용한다. 사람들이 모여 시작하지만 이 교회를 세운 분이 하느님이시고 자신들의 교회가 예수의 교회라는 고백의 방편으로 창립예배를 드린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또 하나 시작되었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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