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목사들의 말잔치, 창립예배는 없다
남들 다 하는 창립예배는 없었다. 2013년 8월 11일 첫 예배를 드린 이후 사람들을 초대하고 노회의 선배 목사들을 불러 진행하는 창립예배는 하지 않았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예배는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일상처럼 진행됐다.
보통 창립예배는 개척교회가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다. 목사 주도로 개척되는 교회의 경우 목사의 직전교회 및 소속 노회 교회들이 창립예배를 통해 후원금을 건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목사는 창립예배를 두 번 하기도 한다. 자신이 발 담그고 있는 관계망의 색이 나뉠 경우 그들을 따로 초대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더 많은 개척자금을 모금하기도 한다.
창립예배에는 순수하게 신앙적 동기도 작용한다. 사람들이 모여 시작하지만 이 교회를 세운 분이 하느님이시고 자신들의 교회가 예수의 교회라는 고백의 방편으로 창립예배를 드린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또 하나 시작되었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셈이다.
나는 이런 창립예배를 거부했다. 나는 이미 교회였고 우리가 이미 교회였기 때문에 교회 창립이라는 공식적 선언은 필요하지 않았다. 교회 이름을 내고 싶지도 않았고 창립예배가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에 대한 신앙 고백이라 느껴지지도 않았다. 내게 창립예배는 그저 하나의 요식행사처럼 느껴졌을 뿐, 교회의 교회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였다.
더 싫었던 것은 창립예배라 이름 붙이고 이런 저런 거드름 피우는 목사들이 와서 순서 나눠먹기 하는 놀음이었다.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면 예배답게, 아니면 순수하게 행사로 진행할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목사들 순서 나눠먹기를 위해 쓸데없는 순서가 한 가득이다. 갑갑한 노릇이지만 그게 현실이고 나는 예외를 한 차례도 보지 못했다.
내가 경험한 교회 행사 대부분은 거창한 말잔치뿐이었다. 그것도 대부분 목사들이 그 말을 장악하고 있다. 목사들에 의한 말놀음, 그것이 한국 개신교의 현실 아니던가. 말이 살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요한복음의 말씀을 모르거나 잊었거나 거역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내게 창립예배는 필요하지 않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모이면 교회인 것이고,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교회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행사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낮은 곳으로 흘러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다.
창립예배를 하지 않았으니 목돈을 챙기지는 못했다. 그래도 우리 교회는 돈이 궁하지 않다. 돈이 많아 궁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돈에 집중하지 않기 때문에 돈에 궁하지 않다. 창립예배 안 하길 참 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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