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쓸모 있는 교회
이웃과 지역사회에 쓸모있는 교회가 되고 싶었다. 교회가 지역사회에 스며들고 말이 아닌 삶으로 예수를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경험했던 교회 조직에서 이것은 꿈같은 얘기였다.
교회의 세가 커지고 헌금액수가 늘고 번듯한 건물이 생기면, 그리고 교회에 의지가 있으면 이런 저런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사회와 교류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물론 한계는 있지만 지역에 쓸모있는 일들도 제법 할 수 있다. 그런 의지를 가진 교회가 얼마 없는 것이 서글프긴 하지만 말이다.
문제는 개척교회다. 도시를 빼곡히 채운 네온십자가, 그 십자가 아래 개척교회들이 있다. 개척교회는 그 네온십자가를 지탱하고 서 있기에도 버겁다. 십자가 아래 짓눌려 이웃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는 커녕 사회적 잉여를 벗어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개척교회 목사들의 낮은 자존감과 시간 죽이기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 뻔한 개척교회는 되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는 예배만을 위한 전용공간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다수의 개척교회가 몇 명 안 되는 성도들의 예배를 위해 과다한 임대료를 지불하며 근근히 버틴다. 일요일 예배를 비롯해 수요일, 금요일, 매일의 새벽 기도회를 열지만 대부분 일요일 예배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엔 한두명이 예배당을 지킬 뿐이다. 우리는 이런 이유로 예배만을 위한 공간을 얻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혹시 예배 공간을 임대한다면 지역사회와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원칙은 지역의 필요에 반응하자는 것이었다. 개척교회가 지역 사회와 소통하는 일을 계획할 경우 가장 어려운 점은 '여력 부족'이다. 돈도 부족하고 사람도 부족하고 경험도 부족하다. 그러다보니 대부분 지역의 필요를 따르기보다 목사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된다. 지역과 동떨어진 일들로 다가가니 진짜 소통이 이뤄지기 어렵다. 이런 악순환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지역의 필요에 반응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원칙을 고수하고 싶었다.
이런 고민의 결론이 어린이 도서관이었다. 주변 도서관 현황을 찾아보고 지역의 사정을 살피기 위해 설문조사도 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특별히 초등학생이 많은 지역이다보니 어린이 도서관이 적절해보였다. 그렇게 길벗어린이도서관의 그림이 그려졌다.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어린이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어린이를 향한 특별한 사명감도 없다. 부교역자 시절 아동부서를 맡아본 적도 없고, 어린이 사역에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린이도서관을 선택한 것은 그것이 지역의 필요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한 길벗어린이도서관은 3년만에 자리를 잘 잡았다. 작전동 주민들의 상당수가 길벗어린이도서관을 안다. 지역의 필요를 채우고 쓸모있는 교회로서의 첫 걸음을 잘 뗀 셈이다.
얼마 전 교우 한 분이 공원에서 만난 이단 전도자들과의 대화에서 모욕을 당했다며 하소연을 했다. 도서관을 운영하는 교회를 다닌다 했더니 교회가 말씀에 자신이 없어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사람들을 유인하는 것이라는 말에 상처를 입은 것이다. 그 교우가 나에게 '왜 도서관을 시작했나' 물었다.
나는 왜 도서관을 시작했을까?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리고 답은 이렇다. 이웃에게 쓸모 없는 교회는 이미 교회가 아니다. 이웃과 함께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이미 복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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