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장 16-21절 (본문보기)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
물 위를 걸어가신 예수에 대한 이 본문은 일부 학자들에 의해 요한복음의 다섯 번째 표적으로 분류되는 기사이다. 그래서 이 사건을 요한복음의 ‘표적’ 중 하나로 보는 사람들은 흔히 1-12장을 표적의 책으로, 13-20장을 영광의 책으로 분류하곤 한다. 그러나 본문의 사건은 요한복음이 일반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표적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요한복음에 일곱 가지 표적이 나타나고 있음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소수의 학자들은 여덟 가지 표적을 말하기도 한다). 다만 본문의 사건을 요한복음의 표적 중 하나로 볼 것인가 하는데서 의견이 갈리는데, 본문의 사건이 다른 표적들과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 이 사건을 하나의 독립된 표적으로 볼 수 없는 결정적 이유가 된다.
요한복음의 모든 표적들은 ‘표적’이라는 분명한 수식이 따르거나, 표적 사건과 관련된 논쟁이 수반된다(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표적’(2:11),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신 ‘표적’(4:54), 베데스다 연못가의 병자를 고치신 일과 이어지는 ‘논쟁’(5:19-29), 오천 명을 먹이신 ‘표적’(6:14),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을 고치신 ‘표적’(9:16),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표적’(11:47), 마지막으로 죽었다가 다시 사신 예수에 관한 도마와의 ‘논쟁’(20:29) 모두 같은 패턴을 따른다). 그러나 본문에 나타난 물 위를 걸은 예수에 대한 사건은 표적에 관한 아무런 암시도, 그에 관한 어떤 논쟁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본문이 요한복음의 독립된 표적이라기보다 오천 명 급식 표적의 의미를 강화시켜주는 일종의 부가적 장치임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별히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요한복음이 예수의 표적을 모두 물, 세례와 관련시켜 보여주는 패턴을 고려할 때 물 위를 걸으신 사건은 급식 표적을 다른 표적들과의 일관성에 맞추는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보인다. 사실 초기 기독교에서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사건은 세례에 대한 모형으로 이해되었고(고전10:1-2) 본문에서 바다를 제압하신 예수의 모습은 이스라엘의 홍해 사건을 연상시키는 기능을 한다. 요한복음 표적의 핵심적 모티브인 세례가 홍해 사건과 연관되어 받아들여졌음을 고려할 때, 홍해사건을 연상시키는 바다를 정복하신 예수에 관한 기사는 요한복음의 표적과 깊은 관련이 있다 하겠다.
중요한 것은 요한복음에서 본문의 사건이 급식 이적과 한 덩어리로 묶여 있다는 점이다(급식 이적과 따르는 논쟁 중간에 이 사건이 위치하고 있다). 이 사건은 공관복음에서도 오천 명 급식 이적 이후에 이어 나오는데(마14:22-33, 막6:45-52), 이는 이 사건이 초기 전승에서부터 오천 명 급식과 연관된 의미를 가지고 전해졌음을 의미한다. 요한복음은 이 관계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급식 이적과 논쟁의 중간에 물 위를 걸으신 예수에 대한 기사를 삽입하였다.
공관복음과 마찬가지로 요한복음의 급식 이적과 이어지는 바다를 정복하신 예수에 관한 기사는 이스라엘의 해방을 기억하는 유월절(6:4)과 관련되어 있다. 유월절 이후 바다를 정복하고 이스라엘을 바다 건너편으로 옮기신 하나님과 광야에서 만나를 먹이신 하나님에 대한 기억이 유월절의 가장 핵심적인 고백이었음을 생각할 때(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의 구속을 설명하면서 홍해를 건넌 사건과 만나 사건을 동시에 언급(고전10:1-3)한다), 본문은 분명하게 출애굽을 통해 이스라엘을 인도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예수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고 계심을 말하고 있다.
“주께서 바람을 일으키시매 바다가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거센 물에 납 같이 잠겼나이다”(출15:10)
제자들이 힘겹게 노를 저어가던 성난 바다는(6:18) 거칠게 파도가 일어났던 홍해에 대한 모세의 표현을 떠오르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칠게 위협하는 바다와 그 바다를 제압하고 백성들을 안전한 땅으로 인도하여낸 모세에 대한 기억이 유월절에 사람들을 먹이시고 거친 바다를 제압하며 바다 위를 걸으신 예수 안에 투영되어 있다.
광야에서 만나를 먹이시고 홍해를 갈라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신 하나님에 대한 유월절의 고백 속에서 요한복음은 하나님의 진정한 해방 사건이 유월절 양으로 죽임 당하신 예수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오천 명을 먹이신 표적 안에 삽입된 바다를 정복하신 예수에 관한 기사는 이런 맥락 안에서 참 해방을 가져다주시는 예수에 관한 주장을 강화한다.
요한복음은 예수를 영접한 제자들이 그들이 가려고 했던 땅에 이르렀다고 보도하며(6:21) 이 사건이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에 대한 암시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해방의 길로 인도하신다. 우리가 가야할 길 앞에 홍해가 놓여 있다면 그것을 가르고, 그 위를 걸어서 우리를 인도하신다. 그것이 요한복음이 말하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 안에 있는 의미이다.
홍해 앞에서 두려움에 어쩔 줄 몰라 하던 백성들을 향해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백성들을 위로하며 홍해를 향해 지팡이를 내밀었던 모세처럼(출14:13)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악의 세력 앞에서 두려움과 공포 속에 두려워하는 자들을 향하여 참 진리 되신 예수께서는 지금도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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