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소개

안녕하세요 박성장입니다. 진심으로 반갑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하늘을 보며, 하늘의 뜻을 생각하며 오늘도 힘 내시기 바랍니다.

2011년 3월 30일 수요일

밥값 - 정호승

지난 주일, 사임을 앞두고 교역자 환송회 때 마지막 인사말 대신에 낭독했던 시입니다.

낭독이 끝나고 싸~~한 분위기를 잊을 수 없습니다.

지옥에 간다는 표현이 그렇게 만들었겠지요.

문학적 표현 하나 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목사님들의 조바심 때문이 아닌지 생각이 들어 조금 답답했습니다.

그래도, 감동 받았다는 목사님 계시니... 감사했습니다. ^^


밥값

- 정호승

어머니

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아무리 멀어도

아침에 출근하듯이 갔다가

저녁에 퇴근하듯이 다녀오겠습니다

식사 거르지 마시고 꼭꼭 씹어서 잡수시고

외출하실 때는 가스불 꼭 잠그시고

너무 염려하지는 마세요

지옥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요

지금이라도 밥값을 하러 지옥에 가면

비로소 제가 인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2011년 3월 29일 화요일

바닥에 쏟은 커피를 바라보며 - 정호승

바닥에 쏟은 커피를 바라보며

- 정호승

바닥에 쏟은 커피는 바닥이 잔이다

바닥에 커피를 쏟으면

커피는 순간 검은 구름이 된다

바다가 비에 젖지 않고 비를 바다로 만들듯

바닥도 커피에 젖지 않고 커피를 바닥으로 만든다

바닥을 걷는 흉측한 발들아

물 위를 걸은 예수의 흉내를 내다가 익사한 발들아

검은 구름떼가 흘러가는 바닥의 잔을 들어라

오늘도 바닥의 잔을 높이 들고

남은 인생의 첫날인 오늘보다

남은 인생의 마지막 날인 내일을 생각하며

봄비 내리는 창가를 서성거려라


* 때론 삶을 살아가다 보면, 인생의 커피를 쏟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삶 속에 등장했던 인물들은 대부분 엎질러진 커피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무시당하고, 내면의 질서를 잃어버린 사람들,

세상은 그들을 향해 바닥에 쏟은 커피라고 말합니다.

** 하나님은 엎지러진 커피를 향해 '쓸모 없다' '가치없다' 말하지 않고 '좀 더 큰 잔에 담겼다' 하시며 스스로 잔이 되십니다.

잔이 크면 누구나 담을 수 있지요. 자신의 잔이 작은 것 생각 못하고 잔을 떠났다, 쓸모 없다 생각할 뿐입니다.

*** 흉측한 발들이 큰 잔에 담긴 커피를 짓밟습니다. 바닥을 어지럽힙니다.

그 발들은 물 위를 걸어가신 예수의 흉내를 내는 발들입니다. 흉내를 내다가 바닥을 짓밟는 것이지요.

**** 목사로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내면의 질서를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사람들보다 부유하고 건강하고 매너 있는 사람들에게 더 마음을 주는 것 같아 민망하고,

속이 상해 울고 싶습니다.

오늘도 봄비 내리는 창가를 서성입니다.

2011년 3월 28일 월요일

새우 까르보나라 도전 ㅋㅋ

휴일을 맞아 함께 공부하던 현주양이 집에 놀러 왔습니다.
전에 약속대로 까르보나라 만들어서 함께 먹었습니다.

얼마 전 처음으로 만들었을 때보다 조금 나았습니다. 그럭저럭 모양도 나오고 맛도 제법 그럴 듯...
5% 모자란 맛이긴 했지만, 점심 식사 시간이 조금 지난 관계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몇 번 더 만들다 보면 맛이 나겠지요...^^


그럭저럭 그럴 듯 하지요? ^^

카페를 열면, 스파게티 하나 정도는 같이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배고프신 분들 드실 수 있게 말입니다. ^^

우리를 배불리시기 위해 자신의 살과 피를 나눠주신 주님의 삶을 기억하며, 많은 사람들의 삶에 배 부른 양식으로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

2011년 3월 26일 토요일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

이제 내일이 되면 2년을 조금 넘게 사역해 온 교회를 사임하게 됩니다.
지난 2년간의 삶이 나에겐 무엇이었나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나의 신학적, 신앙적 양심과는 조금 다른 강조점을 가진교회란 걸 알았기 때문에 부임인사를 하기 직전까지도 '이래도 되나' 하는 마음이 가득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있다는 믿음으로 부임하고 교구를 맡고 심방을 하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 했습니다.
참, 목사 안수도 받았네요. 잊지 못할 사건, 잊지 못할 교회입니다.

지나온 2년 남짓의 시간들을 돌아보면 마치 사막 한 가운데를 지나온 것 같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 갈증의 흔적들이 남아 있음을 보게 됩니다.
메마르고 거칠어서 여기 저기 생채기들이 생겼습니다. 그만큼 더 성숙하고 강해졌으니 오히려 감사할 따름입니다.

2011년 3월 25일 금요일

교자상 만들기 - "참 좋았더라"

조그만 자취방에서 혼자 생활하는 동생이 며칠 전 인천으로 집을 옮기고 저녁 먹으로 우리집에 놀러왔다가,

식사 할 때 쓸 조그만 상, 아니면 침대 위에 깔수 있는 판자 없냐기에

버리려고 문 앞에 내 놓았던 작은 합판 조각에 다리를 달아 조그만 교자상을 만들어습니다. 혼자 식사 하기엔 부족하지 않겠네요.

사포로 대충 문지르고, 베란다 한 쪽에 세워 두었던 각목 조금 잘라 다리 만들고,
다리 흔들리지 말라고 다시 사이 사이에 각목 잘라 대어 준 후

목재용 접착제 발라 적당히 붙인 후 나사못으로 박아 고정시켰습니다.
마감은 니스나 합성 바니쉬 대신 오래 지나 버리려던 올리브유를 천에 적셔 문질러 줬습니다.

석유 냄새도 안 나고, 몸에 해롭지도 않고, 나무의 색감도 적당히 잡아주고, 나무를 오래 보존시켜 주기도 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그다지 폼 나지는 않지만, 한 30여분 만에 만든 작품 치고는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저는 집에서 필요한 작은 가구나 소품들의 상당수를 직접 만들어 사용합니다. 물론 타고난 재주가 조금 있으니 가능한 일입니다.

사실, 상점에 가서 사는 것보다 별로 볼품은 없습니다. 투박하고 어떨 때는 원하는 모양이 잘 안 나오기도 합니다.

처음 물건들을 직접 만들어 사용한 이유는 경제적 압박 때문이었지만 요즘은 취미 생활 겸 해서 하나씩 만들어 봅니다. 개인적으론 매우 즐거운 시간입니다.

별로 볼품은 없지만, 별로 예쁘진 않지만 밖에서 사 온 물건보다 훨씬 더 애착이 갑니다. 제가 직접 만들었기 때문이겠죠.

특별히, 원하는 모습 대로 완성이 되었을 때의 기쁨은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특별히 예쁘거나 세련되지 않아도 말입니다. 오늘도 보잘 것 없는 상 하나 만드어 놓고 좋아서, 자랑하려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시고 "좋았더라" 말씀하셨던 그 마음을 조금, 아주 조금 이해할 듯 합니다. 우리를 만드시고 "매우 좋았더라" 말씀하셨던 그 마음이 조금 느껴집니다. 대단히 예쁘지 않아도 참 좋으셨을 듯 합니다.

그 세상이, 그런 우리가 많이 망가졌으니 얼마나 아프시고 속상하실지도 조금, 아주 조금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주께서 우리를 부르심이 '수리공'으로서의 부르심이 아닐지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

2011년 3월 24일 목요일

묻지 마라 모른다

"나는 기독교 신학자다. 사람들은 내가 이런 질문(왜 이런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을까?)에 답변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난 이런 질문에 뭐라 답변해야 좋을지 전혀 알지 못한다.

내가 기독교 신학자로 살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우리가 이런 질문에 답변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 정도가 될 것이다. 우리의 인간성이라는 것은 그런 질문을 자꾸 하게 만든다. 만약 우리가 현명하다면 침묵 안에 머물러야 한다.

기독교가 세상을 이해하는 "정답"이라고 짐작하는 것은 우리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이라고 기독교인들을 안심시키기 위함이다.  그런 "정답"은 기독교를 설명으로 폄하시킬 뿐이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을 배우는 것은 답이 없이 사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답이 없이 사는 방법을 배우면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이 정말 훌륭한 일이 될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답을 모른 채 계속 살아간다는 것이다. 너무 쉽게 말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나의 주장이 최소한 내가 기독교인으로 살면서 내 인생이 왜 무진장 흥미로운지를 설명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 윤리학의 세계적인 석학', '미국 최고의 신학자'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스텐리 하우어워스 교수가, 풀러신학교 심리학부가 마련한 Integration symposium의 주강사로 참석해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낸 강연의 한 부분입니다.

심각한 조울증 환자인 아내를 돌보며 아이를 키우고 강의를 하는 동안 겪었던 어려움들, 절망들, 아픔들, 고독과 외로움을 솔직하게 고백하며 자신의 삶을 신학적으로 조명했습니다.

저런 대가에게 그런 아픔이 있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고, 그런 삶을 담담히 고백할 수 있는 용기 또한 존경스럽습니다.

하우어워스 교수의 '모른다'는 고백이 제 가슴에 쩌렁쩌렁 울려댑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단지 믿고 갈 뿐입니다.

강연 내용을 보시려면 클릭하세요(강의 내용 요약이 나뉘어서 올라왔네요^^).

첫 번째 강의 보기

두 번째 강의 보기

세 번째 강의 보기

네 번째 질의 응답은 아직이네요 ^^

김춘수 - 꽃


괌에 들어갈 준비를 하며,

그 좋은 관광지(?)에 가서 쓸만한 카메라 하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아는 목사님이 쓰시던 DSLR을 저렴하게 준다기에 큰 맘 먹고 하나 장만했습니다.

기본적 기능 익히기 위해 방에 앉아 요리조리 살펴보며,

시험삼아 찍어 본 "꽃" 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참으로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김춘수 시인의 "꽃" 함께 올려 봅니다.

요즘,

제 이름 불러주는 '좋은 분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2011년 3월 23일 수요일

'나는 가수다' 김건모 재도전 - 원칙과 룰이 지켜지는 교회를 꿈꾸며

최근 '나는 가수다' 라는 모 방송사의 음악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노래 잘 하는 가수 7명이 나와서 공연을 하고, 시민 방청단 500명과 네티즌 문자투표를 통해(정확한지 확실치 않네요..^^) 순위를 메긴 후, 한 명이 탈락하면 다른 도전자가 합류해 공연과 평가를 반복하는 방식의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이 재밌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던 터라,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잠깐 보게되었습니다. 제가 본 건 거의 뒷부분인데, 마지막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이어서 투표와 결과 발표가 있었습니다.
노래를 많이 듣진 못했지만, 실력 있는 가수의 노래를 TV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좀 의아한 상황이 진행되었습니다. 투표결과 1위는 윤도현, 2~6위 발표는 의미가 없고 7위에 김건모씨가 호명되었습니다. 즉, 김건모씨가 탈락한 것이죠.
탈락자를 대체할 8번째 가수로 알려진 김연우씨는 다른 대기실에서 모니터를 보며 기다리던 상황이었구요.

2011년 3월 19일 토요일

일본 지진과 예레미야의 눈물

지난 새벽기도회에서 예레미야의 눈물에 관해 나눴던 적이 있습니다.

"처녀 내 백성의 파멸을 인하여 내 눈에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도다. 내 눈의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시기를 기다리는도다" (예레미야애가 3,48-50)

예레미야는 유다의 멸망을 예고하며 회개를 촉구하던 선지자입니다. 유다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예레미야의 그런 예언이 싫어 배척하며 때론 옥에 가두고 목숨을 위협하며 박해했습니다.

결국,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유다가 멸망했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을 무시하고, 오히려 그를 괴롭히던 사람들이 모두 잡혀가고, 죽고, 나라가 망가졌습니다.

저 같으면 솔직히, 속 시원할 것 같습니다. 나를 억울하게 했던 사람들이 당한 고난을 당연하다 여길 것 같습니다. 물론 마음 한쪽에선 안타까움도 있겠지만, 그래도 잘 됐다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그 백성과 나라를 위해 울고 있습니다.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며 진심으로 슬퍼하며 울고 있습니다. 여기에 예레미야 예언의 진정성이 있다고 느껴집니다.

일본이 지진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한국 기독교의 대표성을 지닐 수 있는 자리에 계신 몇몇 목사님들이 하나님의 심판이래는 둥, 회개해야 한다는 둥, 이런 말들을 쏟아 놓습니다.
그분들의 이런 말씀에서 진지한 사랑,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저 혼자만의 일일까요?

일본이 이런 일을 당하기 전에,
회개해야 한다, 돈만 좇아 가선 안된다, 잘못을 고쳐야 한다 외쳤다면 더 낳지 않았을까요?
지금 당장 힘을 가진 누군가의 앞에서 한 마디 못하다가
그 힘이 사라진 후에, 어려운 일을 당한 후에 고소하다는 듯이 '봐라, 벌 받은 거야' 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요것 봐라' 하며 흔드신 것이다" 라는 식으로 하나님의 이름까지 들먹인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먹고사는 장사치가 아닐까 의심하게 됩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일본이 우리나라에 해 왔던 일들을 생각하면 마음 한 쪽엔 '잘 됐다'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으로서 그런 마음 드는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마음으로 그런 발언을 했다면 이미 기독교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 아닐까요?

예레미야처럼,
잘못된 권력과 지도층을 향해 회개를 외치고,
그것이 자신에게 불이익으로 다가와도 감내할 줄 알고,
오히려 그들에게 고난이 왔을 때, 그 힘을 잃었을 때,
함께 울어주고 진심으로 아파하는 사람이 진짜 지도자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달아나세요!!! Run! Run!

한 목사님의 설교가,

저를 향한 외침 같아서 올려봅니다.



"달아나십시오.
생명을 위해 달아나세요
번영, 부, 성공에 집중하는 복음들로부터 달아나세요.
그리스도의 이름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쓰는 자들로부터 달아나세요.
당신의 주머니를 예수의 이름으로 터는 자들로부터 벗어나세요.
자기계발에만 집중하는 복음으로부터 도망가시기 바랍니다.
죄가 편안하게 느껴지는 교회로부터 도망치십시오.
사랑하는 교회여, 생명을 위해 달리십시오."

달아나십시다.
세속에 물든 교회로부터 달아나십시다.
혹, 당신이 믿는 어떤 목사, 지도자가 세속적 욕망을 드러내거든,
그 사람에게서도 속히 달아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이 설령, 당신이 진실로 믿었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생명을 위해 달아나시기 바랍니다.

2011년 3월 17일 목요일

수요예배 설교 - 구원을 이루라(빌2:12-18)

지난 수요일 설교입니다.

이런 것 아무렇지 않게 올릴 수 있는 내 자신을 보며 많이 뻔뻔해 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로 올릴 수 없어 세개로 나눴습니다.





2011년 3월 16일 수요일

자작 로스터기

수망으로 커피를 볶다보니 여러가지 부작용이 있습니다.
첫째,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습니다.
둘째, 균일한 로스팅이 안 됩니다. 어떤 녀석은 타고, 어떤 녀석은 허였습니다.

그래서 가정용 로스터기를 장만하려고 했더니, 가격이...
결국 하나 스스로 만들어 봤습니다.

기본적인 재료는 '홈XXX'에서 구입한 스텐 싱크대 거름망과 스텐 깔때기입니다.

 









2011년 3월 12일 토요일

새벽기도회에 나누었던 말씀 단상

이사야 6장 1-5절

얼마전 파키스탄의 소수종교부 장관이 재임 10일 만에 피살당했습니다. 신성모독법(이슬람을 폄하하거나 반대할 경우 최대 사형까지 시킬 수 있는 법)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이 장관뿐 아니라 매달 2-3명의 사람들이 암살당하고 있다 합니다. 함께 기도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런 것들로 망하지 않습니다. 로마가 그토록 기독교를 박해 했지만, 기독교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생명을 빼았긴다 해도 기독교 신앙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망할 때가 있습니다. 기독교가 힘을 잃고 망했던 때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을 잃어버릴 때입니다.

거룩함을 잃어버릴 때, 세상과의 구별됨을 상실할 때, 세속화로 인해 하나님 자녀됨이 의미를 상실할 때 기독교는 망했고 또 망합니다. 이 시대의 한국 기독교가 망해가는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거룩함이 선포될 때 '화로다. 내가 망하게 되었다' 라고 탄식합니다. 거룩함을 잃어버릴 때가 곧 망하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이사야는 거룩함을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입술이 부정'하다 라고 말합니다. 입술이 부정한 백성중에 거하는 입술이 부정한 자라고 자신을 진단합니다.

온 백성이 말뿐인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입술이 거룩해 지는 것은 고상한 말을 써서가 아닙니다. 아름다운 미사여구를 사용해야 입술이 거룩해 지고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입술을 통해 선포된 말씀대로 살아갈 때, 입술의 언어들이 삶의 언어가 되어질 때, 입술이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말뿐인 백성들, 종교적 행위만 남아있는 백성들, 그리고 그런 자신을 바라볼 때 망할 수 밖에 없음을 이사야 선지자는 알았던 것입니다.

늘 입술의 언어들을 달고 살아가는 제게 더욱 두렵고 떨리는 아침입니다.

2011년 3월 10일 목요일

한국교회의 미래와 과제 - 잘 죽기

한국 기독교가 망해가고 있습니다.

요즘, 머리 달리고 입 달린 사람들은 누구나 이 말을 합니다.

최근 한 기독교 언론사에서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인터뷰의 주제는 '한국교회의 미래와 과제'.

이만열 교수는 한국교회를 향하여 이대로 가다가는 이내 망한다고 판단하고,

교회들이 '가난 실천'과 '작은 교회 운동'을 실현해 나갈 때 소망의 빛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말합니다.

자세한 기사는 => 여기를 누르세요.

교계 각층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비판도 하고 대안도 내 놓습니다.

저도 이만열 교수님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고 대안도 비슷합니다. 얼마 전 교회의 재정 문제에 관해 쓴 글에서도 비슷한 대안을 생각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궁극적 결론은 조금 다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 기독교는 필연적으로 망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대안들을 내 놓지만, 저 또한 대안을 찾기 위해 평생을 드리고 고군분투 하겠지만, 결국 한국 기독교는 쇠퇴할 것이라는게 저의 결론이고 궁극적 전망입니다.

2011년 3월 9일 수요일

미래목회포럼 참회문 발표 '주여 한국교회를 용서하소서'

지난 자정선언문에 이어 미래목회포럼이 참회문을 발표했네요.

전문을 올려봅니다.

-------------------------------------------------------------------------------


지난해 11월, 미래목회포럼은 '한국교회 목회자 자정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선언문은 교계의 신문과 방송 매체를 통해 민감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만큼 한국교회 근간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사고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교계가 공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뿐이었습니다. 한국교회의 상처가 터져서 고름이 나오는 실정입니다. 한국교회가 사안들의 심각성을 절감하는 데는 불충분하고 실제적으로 문제를 풀어 나가려는 의지도 희박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도 계속 이어지는 사고와 사건들… 이런 때에 각 교단의 중견 목회자 그룹이 참여하는 미래목회포럼은 사태의 심각성이 교회와 지도자들의 자정 의식의 결여에 우선적으로 기인하고 있음을 보면서, 선언의 일과성을 넘어서서 허물과 죄가 우리 안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 스스로 참회하며 자정 의식의 공유와 참여를 위하여 절실한 심정으로 다시 참회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주님의 종으로서의 목회자

1. 주의 종으로서 교회의 사유화를 참회합니다. 사유화를 철저히 배격하고 교회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신뢰도를 쌓아 가겠습니다.

2011년 3월 8일 화요일

상상교회 예배에 관하여

한국교회의 예배에 관하여 제가 가진 소견의 핵심은 예배와 설교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너무 많은 예배가 행해지고(감히 '드려진다'는 표현을 쓰기가 어렵습니다), 너무 많은 설교가 말해집니다(감히 '선포된다'는 표현도 꺼려집니다) 설교에 있어서는 횟수뿐만 아니라 길이도 너무 긴 것 아닌가 합니다.

보통의 교회에서 일주일에 최소 10번의 예배가, 최대 25번 이상의 예배가 진행됩니다(각종 기도회도 예배의 형식을 갖추기 때문에 예배로 포함했습니다).

이 말은 목사가 감당해야 할 설교의 횟수가 일주일에 최소 10회에서 많게는 20회를 넘긴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큰 교회에서 부목사를 여럿 두고 있는 분들이야 부담이 덜 하지만 다른 전임사역자를 고용할 형편이 되지 않는 교회에서는 담임 목사가 이 모든 부담을 안고 가야 합니다.

예배를 많이 드리고 설교를 많이 하면 물론 좋은 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예배와 설교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예배가 세심하게 기획되거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됩니다. 설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많은 설교를 해야하다보니 탁월한 설교의 능력을 물려받지 못한 보통의 목사에게서 좋은 설교를 기대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설교에 대한 부담이 너무 많다보니 다른 중요한 부분들을 놓치기도 합니다. 장기적 안목에서 성경을 연구하는 일이나, 교회의 장기적 비전들을 충분히 고려할 심적 여유를 갖기가 어렵습니다. 더욱이 성도들과의 깊은 만남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이것은 심각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2011년 3월 2일 수요일

큰 딸 박서진 초등학교 입학

드디어 학부형이 됐네요.

어저께 태어나서 앙앙거리고 울었던 것 같은데, 벌써 만 7년이 지나버렸습니다.

몸도 크고, 생각도 크고, 손가락도 길어지고, 이빨도 많이 빠졌습니다. 많이 컸지요. ^^

하지만 가장 많이 큰 것은,

제 마음입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비로소 사람이 되어 가는 듯 하니 말입니다.

오늘 입학한 이 학교에서 오래 다닐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다니는 동안 좋은 친구들 많이 사귀고,

부족한 부분들 잘 다듬어지고,

무엇보다 마음이 많이 따뜻해져서 난로같은 사람이 되어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건강하게 잘 자라준 딸에게 고맙습니다.

건강하게 잘 키워준 아내에게도 고맙습니다.

언니의 짜증도 잘 받아내 주는 둘째에게 또한 고맙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