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장 1-18절
서론 : 세상의 참된 법칙으로서의 예수
요한복음은 철저하게 유대적인 책이다. 이 사실은 서론인 1~18을 보면 분명하게 나타난다. 서론은 요한복음 전체를 요약하는 역할을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적 질서와 완전하게 대조하며 그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서론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와 율법의 대조이다. 예수는 태초부터 있었고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준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말씀으로 번역된 ‘로고스’라는 단어는 단순한 ‘말’의 개념을 넘어서는 헬라 철학적 개념을 포함한다. 즉, 궁극적 원리, 도, 법칙이라는 개념을 포괄하고 있는 단어이다. 이는 요한복음이 유대적 율법질서와 비교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곧 질서가 창조된 것이 아닌 본래적인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한 단어로 보인다. 율법이라는 인간적 법칙, 모세로 말미암은 세상의 체계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창조적 질서, 법칙을 나타내기 위해 요한복음은 예수를 ‘말씀’으로 표현한다.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세상에 의해 창조된 법칙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법칙 이전에 존재하는 궁극적인 법칙이고 그 법이 세상에 나타난 것이다.
요한복음은 창세기적 이미지로 시작해서 창세기적 새 창조로 끝을 맺는다(20:31). 1절의 ‘태초에’는 창세기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만물이 지어졌다는 3절의 표현은 요한복음이 의도적으로 창세기를 가리키고 있다는 점을 증명해 준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며 빛을 만드셨는데 그 창조세계가 빛을 잃어버리고 어둠 속에 방치되어 있다. 깨어지고 망가진 창조세계, 이것이 요한복음의 시작이다. 새로운 질서가 왔지만 깨어진 창조세계 안에서 사람들은 참 빛을 알아보지 못했다. 요한이 와서 빛에 대하여 증거 하였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빛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은 이제 유대 세계로 구체화 된다. 11절의 ‘자기 땅’은 분명하게 창조의 핵심 안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의미한다. 이는 1:49에 있는 ‘이스라엘의 임금’은 이 말씀의 반영이다.
그러나 본래부터 있던 빛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이는 철저하게 유대적 창조 소망과 대치되는 것이다. 이제는 혈통이나 사람의 계보를 통해 하나님의 언약 백성, 참 창조백성이 되지 못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와 진리를 통한 믿음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이러한 요한복음의 핵심적 주제는 요한복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율법과 대치시키는 것에서 분명해진다(17절).
여기에서 율법과 은혜는 칭의론에서 말하는 개념을 넘어선다. 사실 칭의론은 율법과 은혜의 관계를 왜곡시켜왔다. 율법의 부정적이 측면만을 강조해서 성경이 말하는 참 은혜, 또한 하나님과의 언약으로서의 율법을 오해했다. 여기에서의 율법은 창조세계 안에 있는 이스라엘의 독점적 위치, 그리고 배타성과 관련이 있다. 율법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13절), 율법의 계약 백성(17절)이라는 이스라엘의 독자적 지위의 근원으로서의 율법은 한시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은 진리가 아니다. 그것은 본래적인 법칙이나 원리가 아니다.
본래부터 있던 참 말씀, 참 법칙이 우리 가운데 계시되었는데(14절), 모든 사람은 그 법칙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하나님의 자녀라 함은 부활적 존재를 의미한다. 망가진 창조세계에 드리워 있는 어둠을 비추는 빛은 궁극적으로 부활하신 예수를 의미한다. 모든 어둠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셔서 참 생명의 빛을 비추시며 창조세계를 회복하시는 예수 안에서 새로워진 존재가 곧 예수를 영접한자,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새 창조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계시하시고 자녀를 삼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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