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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19일 일요일

요한복음연구 8

요한복음 3장 1-15절

영으로 난 사람

요한복음은 계속해서 표적이란 주제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한 유대인 지도자 바리새인 니고데모가 예수께로 와서 예수의 표적에 대하여 말한다. 예수의 표적이 예수를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으로 증명한다는 고백이다.

예수와 니고데모의 대화는 인자가 모세의 놋뱀과 같이 들려야 할 것이라는 예수의 말씀으로 마무리되며(3:14-15) 표적에 대한 이야기를 강화한다. 이 대화에서 예수의 표적은 궁극적으로 그의 ‘들림’으로 귀결된다.

요한복음은 이중적 의미를 지닌 단어 사용을 자주 사용하는데
대표적인 용례가 이 본문에 들어있다. ‘거듭’이란 단어(3:3)는 ‘위로부터’라는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고(사실 ‘아나텐’이란 단어는 거듭이라는 뜻보다 위로부터, 혹은 처음부터 라는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바람’이란 단어(3:8)는 ‘영’이란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마찬가지로 ‘들리다’라는 단어(3:14)도 이중적 의미를 지니는데 첫째는 십자가에 달리심이고 다른 하나는 승천이나 승귀를 통한 ‘영광 받으심’이란 의미이다. 그래서 이 본문은 예수의 표적들이 궁극적으로 그의 들림, 즉 십자가를 통한 영광으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표적에 대한 언급들은 마지막 일곱 번째 표적인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종속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표적을 통한 예수의 영광 발현(2:11) 또한 그의 들리어짐, 즉 십자가 아래에서 해석된다(3:14).

니고데모와의 대화에 나타나는 거듭남에 관한 말씀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거듭난다는 말 자체가 이미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이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고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말은 하늘로부터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3:13).

사실, 1세기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늘’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우리에게 하늘은 물리적 공간, 넓고 광대하지만 여전히 한정적인 곳으로 생각되지만 1체기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늘은 물리적 세계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하늘은 하나님의 공간이고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차원이었다.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는 말은 인간이 땅에 있다는 말의 대조로서 하나님이 인간과 구별되
어 계시고 영원하고 거룩하신 분임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땅이 인간의 차원, 육의 차원이라면 하늘은 하나님의 차원, 영의 차원인 것이다.

그러므로 거듭났다, 위로부터 태어났다(3:3)는 말은 하나님께로부터 났다(3:2), 하늘로부터 났다(3:13), 영(성령)으로 태어났다(3:5)는 말들과 동의어이다. 그리고 이 거듭남은 철저하게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는 것, 그 부활의 능력을 믿음으로 생명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3:15).

거듭난다는 것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주장은 예수께서 니고데모를 향하여 물과 영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요한복음에서 ‘하나님의 나라’라는 용어는 낯설다. 그러나 현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에 하나님께서 온전한 왕이 되셔서 다스리신다는 개념에서 볼 때 요한복음이 선호하는 ‘영생’이란 말과 동의어이다)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신 말씀에서 확고해진다(3:5).

여기에서 물은 분명하게 세례를 의미한다. 이 말씀 이후에 요한복음은 곧 이어 예수의 세례 사역을 소개하며 세례(물)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 하신 예수의 모습을 그려낸다(3:22). 초대교회의 고백 속에서 세례가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것이었음을 기억할 때(골2:12) 물로 태어난다는 것은 곧 요한복음의 마지막 표적인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1세기 기독교에서 세례와 성령은 동일하게 인식되었다(고전12:30). 최근 소위 성령운동을 주장하는 일부 교파에서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구분하여 성령세례를 강조하지만 그러한 주장은 성경의 전체 흐름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요한의 세례는 땅의 것이고 결국은 쇠퇴할 것이다(3:30). 그러나 예수의 세례는 하늘의 것이고, 그래서 영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예수의 세례를 받은 것은 영생을 얻는 것이다.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은 하늘에서 다시 태어나는 사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세례는 성령과 별개가 아닌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누가는 사도행전을 통해 물세례와 성령의 오심을 어느 정도 구분해서 말하고 있다(행8:16). 그러나 누가행전이 그리고 있는 더 큰 그림에서 볼 때 이러한 구분은 매우 사소한 것이다. 사도행전은 끊임없이 세례와 성령을 하나의 줄로 연결시켜 놓으며(1:5, 2:38, 10:44-47, 19:5) 그 둘이 구분될 수 없는 하나의 사건에 기초하고 있는 것임을 보여준다.

세례를 통하여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고 예수의 영광을 보는 중에 성령은 임한다(7:39). 바람이 물리적 형체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처럼(3:8) 영으로 태어나는 것은 물리적 현상이 아니지만 예수의 십자가에 동참하여 하늘의 사람이 되는 분명한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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