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장 13-22절
이 성전을 헐라
소위 ‘성전정화’ 사건은 사복음서 모두에 기록될 만큼 중요한 사건이었지만 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는 다른 음색으로 이 사건을 연주한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이 사건이 일어난 시점인데 공관복음은 예수 사역의 막바지에 일어난 것으로, 요한복음은 사역의 초반에 일어난 사건으로 그리고 있다.
공관복음에 나타난 성전 사건은 세 복음서 모두 동일한 주제를 보여준다. 핵심은 예수께서 열매 없는 성전을 향하여 멸망을 선언하신 것이다. 유대적 소망의 가장 핵심으로서 성전의 권위는 절대적이었지만 예수께서는 그 성전을 향하여 멸망을 선언하셨고 이것이 예수의 죽음에 대한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막14:58, 15:29).
공관복음에서 성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복음서의 절정에 성전에서 일어난 사건이 있고 예수의 모든 사역이 마치 성전에서의 대결을 준비하기 위한 것인 듯한 느낌을 받는다. 결국 예수께서는 성전의 멸망을 예고하셨고(막13:1-2) 그 이유로 처형 당하셨다.
공관복음에서의 핵심은 이것이다. 거기에는 성전을 종교적으로 정화하겠다거나 사회적으로 개혁하겠다는 의도가 없다. 오히려 핵심은 성전이 가지고 있던 거대한 기득권과 배타적 소망의 철저한 몰락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새로운 소망, 하나님의 나라가 싹트는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성전사건은 그 의미가 급격하게 축소된다. 요한복음에는 이 사건 이후에 공관복음과 같은 여파가 없다. 아무런 후폭풍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 사건은 여기에서 일단락되고 이후에도 예수는 자연스럽게 성전에 드나들었다7:28, 8:2). 성전 사건이 곧장 예수의 죽음으로 이어진 공관복음에 비할 때 이 사건은 급격하게 축소되었다.
요한복음의 성전사건에서도 예수의 성전 부정은 변함없이 핵심적이다. 그러나 핵심적 초점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맞춰져 있다. 성전이 무너지고 삼일 만에 다시 일으켜질 것인데 이는 예수의 육체에 대한 상징이다(2:20-21). 제자들이 이 말의 의미를 깨달은 시점이 예수의 부활 이후라는 언급은 이 사건이 말하려고 하는 것이 예수의 부활이라는 것에 대한 분명한 증거이다.
요한복음은 이 성전사건과 포도주 기적 사건을 1장 51절에 대한 연속선상 안에서 제시한다. 하늘에 있는 인자, 즉 부활하여 그 정당성과 의로움이 입증된 인자에 대한 초보적 표적과 행위를 보여주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포도주 기적과 성전사건은 동일한 주제 아래 묶여 있다. 인자의 신원, 예수의 영광, 즉 부활이라는 굵은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부활을 통해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는 것처럼 성전의 재건립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다. 더 이상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을 담지한 하나님 임재의 장소가 아니다. 성전은 무너질 것이고 하나님의 현존은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말씀이신 예수를 통해 계시된다. 이것이 성전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는 요한복음의 진지한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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