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소개

안녕하세요 박성장입니다. 진심으로 반갑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하늘을 보며, 하늘의 뜻을 생각하며 오늘도 힘 내시기 바랍니다.

2011년 1월 29일 토요일

바리스타 아카데미 2강 - 로스팅과 핸드드립

어제는 로스팅에 관한 기본적 이론 교육과 (실습은 로스팅 과정이 아니기에 어렵고, 마지막 주에 홈 로스팅 방법 알려주신답니다.)

핸드드립 실습을 했습니다(처음 하는 것 치고 잘 한다고 칭찬을 받았습니다.ㅋㅋㅋ).

1. 로스팅(Roasting)

1) 커피 생두를 볶아서 원두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2) 로스팅을 위해서는 생두의 수확 방식, 수확 시기, 등급(생두의 크기와 관련)뿐만 아니라 가공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수확 시기와 가공 방법은 생두의 수분 함량에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3) 수확 방식은 세 가지 입니다. Hand Picking 방식은 손으로 일일이 잘 익은 열매만 수확하는데 가장 고급의 제품이 됩니다. Stripping 방식은 손으로 가지 전체를 훑은 다음 분리하는 작업이고 마지막으로 기계를 이용해 한 고랑 전체를 수확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당연히 덜 익은 열매가 많이 포함되기 때문에 품질은 떨어집니다.

4) 가공 방법은 수세식과 자연 건조식, 그리고 그 둘을 혼합한 방식이 있습니다. 당연히 수세식은 수분 함량이 많아지고, 깨끗하기 때문에 고급 품질이 됩니다. 단 설비 비용과 세척 비용이 많이 들겠죠..^^

5) 로스팅 정도에 따라 단계가 분류됩니다.

   생두 - 라이트 - 시나몬 - 미디엄 - 하이 - 시티 - 풀시티 - 프렌치 - 이탈리안

미디엄 이하로는 한국인이 마시기 어렵고 프렌치나 이탈리안도 선호하지 않습니다.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맛는 것은 '하이'에서 '풀시티' 정도입니다. 프렌치 수준부터는 표면에 기름이 생기는데, 이런 커피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로스팅 과정에서 생두는 풀시티 기준으로 1.8배 정도 커집니다(이하 단계는 1.5배정도).

커피에 따라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적합한 로스팅 수준이 있습니다. 이디오피아 예가체프의 경우 하이로스팅 정도가 적합한데 그 때 신맛과 함께 풍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수업중에 풀시티로 볶아진 예가체프를 맛봤는데, 뭔가 빠진 듯한 맛이었습니다).

전문적으로 로스팅을 하는 곳이 늘어나는 추세이고 로스터리 카페에서는 직접 볶아서 사용하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기계가 잘 나와서 카페용 소형 로스터기는 냄새도 많이 안 나고 입력해 놓은 값에 의해 자동으로 된다고 합니다.

요즘은 집에서도 직접 로스팅을 하기도 합니다. 가정용 로스터기도 있고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수망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수망 안에 생두를 넣고 약한 불에서 흔들거나 저어가며 볶는 방법입니다.

2. 핸드드립

2011년 1월 28일 금요일

[책소개] 주 예수 그리스도 (래리 허타도 지음, 새물결플러스)

'초기 기독교의 예수 신앙에 대한 역사적 탐구' 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초기 기독교가 예수를 섬김의 대상, 신앙의 대상으로 고백하게 된 현상에 대한 방대한 연구서적입니다(번역된 책으로 1100 페이지가 넘습니다.).

아마도 제가 소장하고 있는 단행본 중에 가장 두꺼운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책을 너무 두껍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톰 라이트의 책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 같은 경우엔 페이지도 더 많고 내용도 훨씬 긺에도 불구하고 책을 얇게 만들었는데, 이 책은 지나치게 두껍게 만든 감이 있네요..^^

철저한 유일신 유대교에서 시작된 기독교가 어떻게 예수를 섬김, 예배의 대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

그 원동력으로부터 시작해 성경과 성경 외 증거들이 말하는 현상들을 철저하게 분석해서 보여줍니다.

이 책의 장점은 '예수 섬김'이라는 하나의 주제 아래서 초기 기독교의 자료부터 시작해 2세기 교부들의 저작에 이르기까지 총망라 해서 다뤘다는 것과

예수를 신적 지위로 격상시켜 예배의 대상으로 섬겼음을 증명, 혹은 암시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자료를 언급하며 비평했다는 점입니다.

2011년 1월 27일 목요일

요한복음연구 20 - 네 번째 표적 - 오천 명을 먹이시다

요한복음 6장 1-15절 (본문보기)
  
네 번째 표적 - 오천 명을 먹이시다

예수를 모세와 비교하며 모세의 글이 예수를 증언한다는 요한복음의 주장(5:46-47)은 이어지는 오천 명 급식 사건을 통해 구체화 된다. 오천 명을 먹이신 표적이 전체적으로 모세를 연상시키고 있고, 이 표적을 통해 예수께서 모세를 초월하는 ‘그 선지자’이고(6:14), 더 나아가 참 생명을 주는 메시아임을 보여준다.
본문의 시간적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탈출하여 경험한 자유와 해방, 그리고 그 길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유월절이고(6:4), 공간적 배경은 바다를 건너온 뒤(6:1) 산에 올라와서이다(6:3).

요한복음에는 유월절이 세 번 등장하고 그 유월절에 있었던 사건을 세 가지 기록한다. 첫 번째는 성전에 들어가 성전을 뒤집어 놓으신 사건과 그 표적으로 성전이 삼일 만에 다시 세워지리라 말씀하신 사건이고(2:13-22) 두 번째는 본문에 나타난 5천명을 먹이신 사건이다. 마지막 유월절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잡히시고 처형당한 이야기가 유월절 엿새 전부터 유월절과 관련하여 끊임없이 나타난다(11:55, 12:1, 13:1, 19:14).

2011년 1월 26일 수요일

바리스타 아카데미 1강 - 커피 맛의 비밀

1. 커피의 원산지는 동아프리카의 에디오피아입니다.

이후 중동의 이스람권으로 전파되었고(이스람은 술을 마시지 않아서 커피를 선호하게 되었다네요), 그 이후에 유럽 상인들에 의해 유럽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유럽에선 이교도들이 마시던 것이라 하여 거부하다가 교황에 의해 공인 되면서 이탈리아의 커피 전통이 시작 되었답니다. 이후에 유럽 식민지 국가들에서 경작 되면서 많이 보급되었답니다.

2. 콩의 종류는

크게 일반콩과 '피 베리'(혹은 펄 베리)로 나뉩니다. 커피 열매는 약간의 과육과 그 안에 열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두 쪽으로 된 씨앗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생두는 이 두 쪽의 씨앗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원두를 보면 한쪽 단면이 납짝하지요.. 두 쪽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단면입니다.

그런데, 일부 콩은 씨앗이 두 쪽이 아닌 한 쪽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둥근 모양을 하고 있지요. 이 콩이 바로 피 베리입니다. 일반적으로 이 피 베리가 더 맛이 좋다고 해서 조금 비싼 콩입니다.

2011년 1월 23일 일요일

요한복음연구 19 - 예수에 대한 증언들

본문 : 요한복음 5장 30-47절 (본문 보기)

예수에 대한 증언들

예수에게 심판의 권세가 주어졌다는 확언은 필연적으로 그 정당성에 대한 근거를 요청한다. 요한복음은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심판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에 대한 증언에 관심을 갖고 이를 보도한다. 이는 요한복음이 유대교와의 갈등 속에서 기독교를 변증하기 위해 기록된 책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공관복음이 예수 사역의 사건들에 관심을 갖고 예수를 따르는 삶의 의미에 대하여 주로 말하는 것과 달리 요한복음은 예수 안에 하나님의 유일한 영광이 존재한다고 선언하고 그 근거에 대한 증언들에 관심을 갖는다.

본문은 예수의 인자됨에 따른 심판의 권세(5:27)에 대한 증거 제시이다.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께 이러한 권한을 주셨는데, 이는 예수의 단독적 주장이 아니라 이미 많은 증거들이 증언해 주고 있는 사실이다(5:32).

본문에는 크게 세 가지 예수를 향한 증언들이 등장한다. 첫째, 세례 요한의 증언(5:33-35), 둘째,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들과 표적들(5:36),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증언하시는 성경이다(5:37-47). 이런 증언들 중 가장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물론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믿는 성경이 예수에 대한 증언이라는 주장이다.

2011년 1월 21일 금요일

제자교회 정삼지 목사 32억 횡령 의혹(교회재정과 십일조에 대한 소고)

정삼지 목사가 교회 공금 횡령 혐의로 기소된 후 검찰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2008년 8월부터 최근까지 총 32억 6천 6백만원을 계좌이체와 계좌 입금 방식으로 횡령했다 한다.
억 소리난다. 32억이라니... 돈이 뭐길래... 정목사, 그리고 함께 했던 몇몇 집사들 모두 처벌이 불가피해 보인다.

교회의 재정 투명화를 외치는 장로와 교인 200여명이 출교를 당한 상태이긴 하지만(최근에 장로 한 명이 또 출교 당했다),  어쨌든 시간이 가면 자잘못이 드러나겠지..

그러나 정작 문제는 정삼지 목사의 개인적 처벌이나 교회의 재정 투명화 등과 같은 것이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한국 교회 안에 있는 듯 하다.
모든 문제의 근원에는 교회가 너무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는 데 있고,
더 심각한 문제는 돈이 많아지는 것과 하나님의 축복을 동일시 하는 맘모니즘이 교회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현상의 핵심에 십일조를 향한 비성경적, 비상식적 집착이 있다
(정삼지 목사와 같은 경우엔, 개척목사로서 자긍심이 도를 넘어 교회를 부흥시킨 자신에게 교회와 교회 재산의 소유권이 있다는 인식이 또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한 듯 하다).

1. 교회에 돈이 너무 많다.

2011년 1월 20일 목요일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 절룩거리네

오늘 처음 만난 락 밴드... 이름이 좀 웃기네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라...
우연히 접한 '절룩거리네'란 노래..
참 좋네요.. ^^

자작곡 3 - 마라나타(성만찬 찬양)


마라나타는 계시록 마지막 장에 나오는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라는 의미의 아람어입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초기교회에서 성만찬 마지막에 불려졌을(혹은 외쳐졌을) 간구입니다.

그래서 다음에 성만찬을 하면 마지막에 부를 찬양으로 만들어 봤습니다.

이렇게 계속 하다보면 좋은 곡들이 나오겠지요.. ^^

오르간 반주 파일을 올려봅니다.


2011년 1월 19일 수요일

요한복음연구 18 - 아들의 권세

요한복음 5장 19-29절 (본문보기)

아들의 권세

요한복음에는 아버지와 아들의 매우 친밀한 관계가 드러난다. 예수께서 아버지 안에, 아버지께서 예수 안에 계시다는 주장(14:10)을 넘어 예수와 아버지가 하나라는 선언(10:30)에 이르기까지 아버지와 아들의 밀접한 관계가 끊임없이 나타난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이 동등한 관계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아들 예수는 철저하게 아버지에게 종속되어 있다. 아들은 아버지의 권한 아래 있으며(8:28, 15:10) 아들은 궁극적으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아버지의 일을 이루는 존재이다(17:4).

본문에도 이러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잘 나타나 있다. 아버지 안에 있는 생명을 아들에게도 주셨고(5:26) 아들을 공경하는 사람이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이다(5:23). 아버지는 자신의 모든 일들을 아들에게 보여주셨고(5:20) 아들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해 주셨다(5:22). 그러나 또한 분명한 사실은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떠나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5:19). 아들은 철저하게 아버지의 뜻에 종속되어 있고 그것이 요한복음에 나타난 아버지와 아들 관계에 있어서 핵심이다.

목사로서 떳떳하게

작년 9월 장신대에서 신대원 3학년 헌신예배가 있었다.
이제 사역의 현장으로 나가는 학생들에게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라는 제목으로 박동현 교수님이 설교를 하셨는데,
내 가슴을 찌르는 말씀이 있었다.
그 말씀은 교수님에게 전달 된 전자우편에서 시작된다.

[지난 8월 하순에 신대원 올해 졸업생 한 분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전자우편을 받았습니다.

“ ... 오늘은 한 가지 여쭈어 볼 것이 있어서 메일을 보냅니다. 저는 공부를 더 하기 전에  한국의 교회를 위해서 무얼 공부하면 좋을까 하는 마음으로 전임전도사를 해보기로 결정하고 현재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담임목사님도 아주 인격적인 분이시고, 제가 하고 싶어 하는 작은 목회를 마음껏 할 수 있습니다. 조금 가난한 것을 제외하고는 다 좋습니다. 형편이 많이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2011년 1월 14일 금요일

[책소개] 고래가 그랬어 (월간 어린이 교양지)

김규항 선생이 발행인 및 편집인으로 있는 어린이를 위한 월간지이다.
올 1월호가 86호니까 벌써 7년이 넘은건데, 얼마전 우연찮게 알게 되어 정기구독을 신청했다.
우리집에 어린이가 없었으니 모르는게 당연했겠다.

초등학생들, 주로 3학년 이상이라면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집 큰애가 이제 초등학교 들어가는데, 좀 무리했나 싶기도 하다.
다행히 한 시간 넘게 붙잡고 있더니 재미있단다. 만화를 위주로 읽긴 했지만 좋아하니 다행이다.

기대보다 알차게  꾸며졌다.
아이들의 소소한 목소리에서부터 필요한 정보들까지 대충 훑어 봤는데 잘 꾸며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꼭 생각해야 할 문제들도 함께 다뤘고, 공부와 학원, 경쟁에 지쳐 있는 아이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전해주는 내용들이 많아 참 좋다.

초등학생이 있는 가정이라면 신청해서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한 권에 9,500원,
1년 정기구독이 95,000월이다.
아직 입금도 안 했는데, 벌써 책이 왔다. 참 착한 출판사다. ^^

또 후원자들의 후원을 통해 매달 공부방 및 분교 등 3,000여 곳에 후원을 하고 있단다.
잘 됐으면 좋겠다. ^^

2011년 1월 13일 목요일

동녘 어린이 도서관 방문

일산 풍동에 있는 동녘 어린이 도서관에 다녀왔습니다.
혼자 가기 심심해서 다른 목사님 한 명 꼬드겨서 함께 다녀왔습니다.

동녘교회에서 운영하는 어린이 전용 도서관인데 도서관을 시작한지는 11년, 현재 자리로 옮겨 온지는 3-4년 되었답니다.
동녘교회 교인이면서 도서관 사서로 일하시는 집사님의 친절한 설명을 커피 한 잔과 함께 감사히 받았습니다.(참... 이름도 여쭙지 못했네요... 정신이..)


30여평 쯤으로 보이는데 동네 도서관치고는 큰 편이랍니다. 책은 1만 3천권정도 있구요.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좁지 않은 중앙 공간이 있고 안 쪽으로 약간의 서가와 아이들이 앉아 있을 수 있는 의자, 테이블 등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한 쪽으론 작은 주방도 마련되어 있고 세미나를 진행할 수 있는 작은 방도 두 개 있습니다.
뭐.. 도서관 구조는 그 정도네요.


하루에 이 곳을 찾아오는 아이들은 대략 20-30명 정도, 물론 지역적 특성상 부모님들이 함께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근처 아파트 단지 안에 작은 도서관들이 몇개 더 생기면서 도서관이 조금 위축되고 사람도 조금 줄었답니다.
만나뵌 사서는 그곳에서 일한지 1년 조금 넘었는데, 여러가지 프로그램들을 운영하면서 아이들과 학부모를 도서관과 연결시키고 있었습니다.
매일 매일 요일별로 '배움터'라는 이름으로 문화센터를 운영하고 있었고(무상으로, 혹은 저렴한 비용으로), 거기에서 약간의 수익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사람들을 도서관과 이어주는 많은 역할을 이런 프로그램들이 감당하고 있는 듯 했구요.
(사진에 있는 프로그램 게시판은 담임목사님이 직접 만들고 사모님이 글씨를 썼다는군요. 와우..^^)

작년까지 회원제(무료회원과 유료회원)로 운영하던 방식을 올해부터 모든 회원을 무료회원으로 바꾸고, 정부 보조 약간과 CMS 후원, 교회 후원, 문화센터를 통한 약간의 수입으로 운영을 하고 있다 합니다. 사서 월급과 아주 기본적인 지출 정도의 수입인 듯 합니다. 그나마도 이전엔 충당이 안 되었다고 하니 운영이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도서관을 계획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상황에 따른 도서관의 정체성인듯 합니다.
동녘 도서관이 위치한 곳은 일산 풍동 신도시 지역으로 근처에 큰 도서관도 있고 동네 작은 도서관들도 많고, 교육에 관해서는 풍요로운 그런 곳인듯 합니다. 꼭 책에 대한 필요보다 문화적 필요들이 더 많은 곳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일단 제가 생각하는 지역은 교육적 빈곤지역, 저소득층 지역입니다. 그러니 도서관의 정체성과 그에 따른 운영 방향도 많이 달라지겠죠. ^^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도서관이란 것이 수익을 내는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설립 자금은 물론이려니와 운영자금을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최대한 정부의 보조를 받는 방법들을 찾아야 할 것이고, 내부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방안들도 생각해 봐야 할 듯 합니다.

둘째, 당장 책에 관심 없는 지역 아동들을 어떻게 도서관으로 유입시킬 것인가 하는 운영에 관한 것입니다.
각급 학교와의 연계(중고등, 대학교는 봉사자로)와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이 되어야 할테고,
문제아동 치유센터나 방과후 아동센터 기능도 함께 고려해 봐야 할 듯 합니다.

오늘 방문으로 만나 사서분이 오래 계셨던 분이 아니라 초창기 이야기를 듣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그래도 소중한 시간이었고, 조금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어서 참 좋았습니다.

사서 집사님의 처음 말씀이 생각나네요.

"분명한, 굳은 의지가 없으면 어렵습니다. ^^ "

교회 성장과 돈, 섹스, 권력

또 터졌다.
하루가 멀다하고 교회 안에 있는 비리, 문제들이 매스컴에 오르내린다.

ㅅ교회, ㅇ교회, ㄱ교회의 성추행 파문에 이어,
ㅈ교회 돈문제,
ㅈ교회 정년 연장문제,
ㅅ교회 담임목사와 부목사간의 폭행 문제,
ㅇ교회 폭행시비문제에 이어
분당에 있는 모 교회 목사의 성문제와 돈 문제가 언론에 공개됐다.

위에 있는 모든 교회의 공통점은 소위 성공한 교회, 성공한 목사라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미친듯이 좇고 있는 '성장'을 이룩한 교회, 부흥한 교회와 담임 목사들이다.
그리고 그런교회들이 대부분 돈과 섹스와 권력에 걸려 넘어진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도 성공하고 싶다. 큰 교회, 많은 성도를 거느리고, 그들에게 추앙받고, 이름도 널리 떨치며, 여기저기 자랑하며 다니고 싶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러고 싶었다.
그런 소망을 가지고 스무살 신학교에 들어왔고, 그런 삶이 목사의 삶이 아니란 걸,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란 걸 안 이후에도 상당히 오랫동안 내 욕구 중심에 남아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조금씩 그 마음들이 사라지고 이제서야 조금 바른 삶과 목회를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목사들은 하나같이 모두 유능한 목사들이다. 설교도 잘하고 교회 행정도 탁월하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돈에, 어떠 사람은 권력에, 어떤 사람은 섹스에 영혼이 팔려 버렸다.
유능하지만, 그래서 교회 부흥도 잘 시켰지만 가장 중요한 것에서 걸려 넘어졌다.

모두 다 유능해서 존경받던 사람들이다. 교회가 부흥하니 모든 면에서 면죄부가 발행됐던 사람들이다. 교회가 성장하니 당연히 영성있고 훌륭한 사람이라 평가되던 사람들이다. 사건이 터지기 전 그들의 기사들은 하나같이 새롭고, 탁월하고, 유능하고, 건강하고, 바람직한 목회자상으로 부각되던 사람들이다.

목사를 평가하는 기준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지금 한국교회에 있는 유일한 잣대는 교회 부흥이다. 그것만이 목사를 평가하는 잣대가 되어 있다. 그래서 큰 교회 목회를 하면 뭔가 대단하고 큰 일을 하는 것처럼 말하고 떠든다.

그 목사님들을 비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어떠냐고?
돈? 좋아한다. 섹스? 당연히 좋아한다. 권력? 돈이나 섹스만큼은 아니지만 좋아한다. 설마 나는 싫어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그들이나 나나 별반 다를게 없다는 말이다.
사람이니 그럴수도 있다. 그러면 안 되지만 그럴 수도 있다.

문제는 인간적 유능함이, 그래서 그 유능함으로 이뤄진 교회 성장이 마치 하나님의 절대적 보증인양 떠들고,
교회만 성장하면 면죄부가 발행되고,
부흥시킨 목사에겐 뭔가 특별한 영성이 있다고 믿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다고 믿는, 하나님이 거기 꼭 계신다고 믿는 그 미신적인 믿음이 문제인 것이다.

이번 사건의 주인공인 분당의 모교회 목사님이 당회에서 이런 말을 했단다.
"내가 이 정도 돈 쓰는게 뭐가 문제냐?"
20년 전 자신이 개척해서 이룬 교회니 자신의 교회고 자신에겐 교회 돈 쓰는데 권리가 있다고 믿는 듯 하다.

교회가 부흥했으니(성인이 5-6000명 쯤 된다) 자신은 하나님의 분명한 사자이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있고, 특별한 영성이 있다고 믿는가보다. 아니면 교회가 자기 사유재산이라고 믿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이런 인식이 그분만의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상당히 많은 목사와 성도들이 이런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나도 그랬다.

분명한 사실은, 목사의 목사됨은 그의 유능함, 교회성장, 부흥 따위와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이고,
하나님은 교회의 부흥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 닮은 제자들의 십자가 짊과 섬김을 통해 일하신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연약한 사람들이기에, 누구나 그런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기에, 하나님 앞에 겸허히 엎드릴 수밖에 없지만,
목사를 평가하고 저울질하는 그릇된 잣대는 고쳐져야 할 일이다. 돈과 미모와 권력만을 좇아가는 세속적 평가가 그대로 교회 안에 들어와 큰 교회, 화려한 교회, 힘 있는 교회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 인양 평가되는 그런 잣대는 속히 사라져야 할 일이다.

2011년 1월 12일 수요일

요한복음연구 17

5:9b-18   (본문보기)

안식일과 노동 금지

베데스다와 같은 세상을 고치고 새롭게 하시는 예수의 표적에 이어 요한복음은 그것이 안식일에 이루어졌고, 그 결과 안식일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고 말한다. 안식일에 관한 논쟁은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 모두에 등장하지만 강조점은 조금 다르다. 공관복음에 나타난 안식일 논쟁의 핵심은 노동의 금지가 ‘무엇(누구)을 위한 것인가’ 하는데 있다면 요한복음의 안식일 논쟁은 ‘노동의 금지’ 자체를 부정해 버린다.

요한복음이 안식일을 향하여 관심을 갖는 주된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행위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 완성을 의미하며 그 완성을 기억하는 날이다(출20:11). 노동의 금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든 창조를 완성하신 하나님의 쉼이며 요한복음은 그 사역에 참여하는 것이 안식일의 참된 의미라고 말한다(5:17).

전체 이야기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새 창조로 그리고 있는 요한복음은 안식일 논쟁도 창조와 쉼이라는 하나님의 창조 이야기로 연결시킨다. 세상을 새롭게 하시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표적으로서의 베데스다 연못 병자 치유와 함께 안식일 논쟁이 공개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2011년 1월 11일 화요일

[책소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한겨레 출판)

일단, 책 제목이 더럽다.
세상이 1등만 기억하긴 하지만, 세상이 더럽긴 하지만,
그래도 더럽다고 규정지어 버리기에는,
더럽지만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일단 책 제목은 이렇다.

'한겨레21'에서 주관한 일곱번째를 맞는 인터뷰 특강의 내용을 책으로 낸 것이다.
이번 특강의 강사는 노회찬, 앤디 비클바움, 김제동, 공지영, 마쓰모토 하지메, 김규항이었다.
김제동씨의 강연은 본인의 요청으로 책에서 빠졌다.
평소 좋아하던 공지영 작가, 김규항 선생이 강사로 참여했기에 구입해서 읽었다.

노회찬씨는 역시 정치인이라 신뢰가 안 가고... ^^
재미있고 독특한 일을 하는 앤디 비클바움이나 마쓰모토 하지메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 저렇게 사는 방법도 있구나,
저항이란 것이 즐겁고 행복한 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김제동씨의 강연이 빠져 있는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사실 크게 기대하는 바는 아니다.

공지영씨의 글, 인터뷰를 접할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별로 특별하지 않다. 그런데 늘 끌린다. 이게 공지영 작가의 힘이다 싶다.

역시 김규항 선생의 글과 말에는 힘이 있다. 정말 깊이 있는 사색과 통찰이 있어서 좋다.
이번 강연 주제는 교육으로 잡았는데, 그가 진단하는 바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은
'교육이 없다'는 것이다. 오직 대학입시만 존재하고 교육은 없다는 것이다. 뭐.. 다 아는 사실이긴 하지만, 강연 구석구석에서 전해오는 그의 통찰에 박수가 나온다.

책을 읽으며 내친김에 김규항 선생이 발행하는 어린이 잡지 '고래가 그랬어'를 1년치 정기구독 신청했다.

강연중에 나오는데, 독일의 교육환경을 잘 그려놓은 '꼴찌도 행복한 교실' 이란 책도 구매해야 겠다. ^^

어찌됐든, 다섯명이 공통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다.
일등 안 해도 행복할 수 있는, 일등이 아니어도 충만한 삶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참 고맙고 행복하다.

2011년 1월 5일 수요일

책소개- '신을 옹호하다' (테리 이글턴 저, 모멘토출판사)

부제가 '마르크스주의자의 무신론 비판'이다.

원제목은 REASON, FAITH, AND REVOLUTION: REFLECTIONS ON THE GOD DEBATE

영국을 대표하는 마르크스주의자 중 한 사람인 저자가 가톨릭 신자로서 기독교를 옹호한 책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과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신은 위대하지 않다'에 대한 공식적인 반박이다. (저자는 도킨스와 히친스를 합쳐서 '도치킨스'라 부른다)

도킨스의 책 '만들어진 신(GOD DELUSION)'이 출간된 이후 큰 반향을 일으키자 여러 개신교 인사들이 반박하는 책을 냈다. 그 중 가장 핵심저인 책이 알래스터 맥그라스의 '도킨스의 망상(Dawkins Delusion?)' 이라는 책이다.

사실 맥그라스의 멋진 반박을 기대 했었는데 그의 책을 읽으며 조금 실망스러웠다. '나도 이정도는 말하겠다'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신학에 대한 이해만 있어도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내용들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접한 테리 이글턴의 '이성, 신앙, 혁명'에 관한 이 책은 도치킨스의 사고체계와 세계관을 근본에서부터 해부해 버린다.

그의 기독교 이해는 근본적으로 가톨릭 최고의 신학자인 아퀴나스에게 뿌리를 내리고 있고 한국 사회에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겠지만 마르크스주의적 좌파 사상과 기독교 신앙이 잘 조화되어 있다.

그의 기독교 이해가 전부 수긍되고 이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비판하는바 도치킨스의 자유주의적 세계관과 그 안에서 횡성수설하며 저급한 학자적 태도를 보이는 그들을 향한 비판은 매우 예리하고 정확하다고 느껴진다.

여기에서 모든 내용을 요약할 수는 없고, 도치킨스의 '만들어진 신'이나 '신은 위대하지 않다' 류의 책을 읽고 그들이 가진 핵심적 문제가 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 저자의 다른 책

성자와 학자 (이 책은 저자가 쓴 소설입니다)

요한복음연구 16 - 예수의 세번째 표적(38년된 병자)

본문 : 요한복음 5장 1-9a절 (본문 보기)

예수의 세 번째 표적 - 38년 된 병자

예수의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과 함께 세 번째 예수의 표적이 나타난다. 요한복음은 더 이상 ‘세 번째’라는 표현을 쓰지 않지만 독자들은 이미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셈을 하고 있을 것이다. 세 번째 표적은 베데스다라 하는 연못가에 있던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사건이다.

이 표적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바로 부활이다. 이 표적으로 말미암은 유대인들과의 논쟁에서 예수는 죽은 자를 일으키시는 하나님에 관해 말하고 있고(5:21) 예수를 믿는 자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으며(5:24) 선악간의 행한 일을 따라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5:29).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5:8)

2011년 1월 2일 일요일

책소개- '요한복음서와 로마황제숭배' (김선정, 한들출판사)

요한복음을 로마제국이라는 정치적 환경에서 읽은 좋은 책이다.

기존의 요한복음 연구가 주로 유대교와의 대립 관계에서만 연구되었다면 이 책은 로마제국, 유대인(회당), 요한공동체라는 삼자 대립의 관점에서 요한복음을 풀었다.

크로산이나 호슬리 등에 의해서 이미 친숙해진 신약성서의 로마라는 배경을 요한복음에 잘 적용시켰고, 그런 면에서 아주 훌륭한 요한복음 연구라 할 수 있겠다.

핵심적인 내용은 이렇다.

[아우구스투스가 부친 율리우스 시져를 신으로 격상시키고 자신을 신의 아들로 선포한 이래 로마의 황제들은 스스로 신이 되어 로마를 다스렸고 신이 된 황제 숭배를 강요했다. 곧 신-왕 일치의 황제숭배가 요한공동체가 처한 소아시아지역의 시대적 정황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유대인들은 일종의 타협점을 찾아내는데, 신-왕 분리를 통한 각각의 대처가 그것이다.

유대인들은 메시아 대망 속에서 신과 왕을 분리하여 유일신으로서의 하나님은 인정한 반면 왕으로서의 메시아는 거부하였다.

그래서 타 종교에 대해 관용적이었던 로마제국 안에서 유일신 사상을 유지할 수 있었고, 왕으로서의 로마 황제를 인정함으로써 로마와의 대립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요한 공동체는 유대인의 이런 타협을 거부하며 신-왕 일치 사상을 주장하였고, 예수를 참 하나님이요 참 왕으로 고백하며 로마 황제 숭배를 거부하였다.

뿐만 아니라 요한복음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볼 수 있는바와 같이 예수가 로마 황제보다 더 뛰어난 신-왕 이라고 주장하였다.

요한공동체의 이러한 반 로마 신학은 정치적 위협이 되었기에 타협적 태도를 가지고 있던 유대교 회당에서 출교 당했고 로마의 박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로마, 유대교와의 이런 갈등 안에서 요한공동체는 '신들의 공동체', '포괄적 공동체', '계명 공동체', '영생 공동체'라는 정체성을 확립해 나갔다.]

결론으로 제시한 공동체의 정체성에 대한 접근이 좀 '쌩뚱'맞아 전체적인 논지를 정리할 다른 좋은 방도가 떠오르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전반적으로 좋은 주제를 잘 정리한 좋은 책이라 여겨진다.

이 책의 가장 핵심적 논지는 이것이다.

[로마의 황제 숭배 강요 안에서 유대교는 황제숭배 안에 있는 '신-왕 일치' 사상을 '신-왕 분리' 사상으로 대처했고, 요한 공동체는 이 유대교의 방식을 비판하며 '신-왕 일치' 사상으로 로마 황제숭배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러나 여기에는 몇 가지 의문점이 있다.

첫째, 유대교 메시아 사상의 가장 핵심은 '야훼께서 왕이시다'라는 것인데 유대인들이 유대인들이 왕으로서의 하나님을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것이다.
제시하고 있는 요한복음 본문 몇몇이 그렇게 읽힐 수도 있겠다 싶지만 유대교가 '야훼께서 왕이시다'라는 사상을 쉽게 포기했다는 것은 개연성이 떨어져 보인다.

둘째, 같은 맥락에서, 저자는 요7:26을 예수를 메시아로 이해하면서 동시에 배격한 본문으로 이해하고 유대인들이 메시아 사상을 포기한 것처럼 이해했다. 그래서 유일신 사상과 왕으로서의 메시아 사상이 분리된 것이라고 논지를 이어가는데,
본문에서 유대인들이 메시아 사상을 포기한 증거를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저자의 논지는, 유대인들이 신-왕 일치 사상을 포기하고 로마와 타협했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을 때 꽤나 설득력 있는 타당성을 갖는다.
그러나 이를 위하여 제시하고 있는 본문들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모든 것들을 접어두고

요한공동체의 상황을 로마제국이라는 정황 속에서 읽은 것 자체 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주목 받을만 하다. 더 많은 연구가 이뤄져 더 좋은 결과들이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