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요한복음 5장 1-9a절 (본문 보기)
예수의 세 번째 표적 - 38년 된 병자
예수의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과 함께 세 번째 예수의 표적이 나타난다. 요한복음은 더 이상 ‘세 번째’라는 표현을 쓰지 않지만 독자들은 이미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셈을 하고 있을 것이다. 세 번째 표적은 베데스다라 하는 연못가에 있던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사건이다.
이 표적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바로 부활이다. 이 표적으로 말미암은 유대인들과의 논쟁에서 예수는 죽은 자를 일으키시는 하나님에 관해 말하고 있고(5:21) 예수를 믿는 자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으며(5:24) 선악간의 행한 일을 따라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5:29).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5:8)”
일어나라는 헬라말 ‘egeiro’는 예수의 부활과 관련되어 나타나는 단어이다. 성경은 예수의 부활을 말할 때 ‘일으키셨다’ ‘일어났다’라는 뜻을 가진 egeiro를 사용한다. 예수께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사건은 죽음의 권세 아래 있던 병자 중의 병자를 고치신 것으로 예수로 말미암은 부활의 표적이다.
특별히 38년이란 세월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방황하며 모든 장정들이 진 중에서 멸절된 시간을 의미한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 팔년 동안이라 이 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대로 진 중에서 다 멸절되었나니(신2:14)”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을 빠져 나왔지만 하나님을 거역하며 우상 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광야에서의 방황이다.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까지 38년 동안 모든 장정이 ‘죽었다’고 말한다. 38년이란 시간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죽음을 경험한 시간을 의미한다.
38년 된 병자가 낫기를 소망하며 기다리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는 베데스다 연못은(대부분의 고대 사본에서 4절은 나타나지 않는다. 연못가에서 실제로 치유가 일어났다고 보기 어렵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원하지만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의 이미지와 정확하게 겹친다. 즉,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 운명에 찾아오셔서 그 죽음에서 일으키시고(5:8) 새로운 생명을 주시는(5:25) 예수의 정체성에 관한 표적이 바로 이 이야기인 것이다.
베데스다 연못가는 ‘어두움’으로 표현되는 요한복음의 ‘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세상은 모든 온전함이 깨어진 상태이다. 보기에 심히 좋았다던 창조의 신적 아름다움이 모두 사라지고 병듦과 신체적 결함과 결핍, 건조함만이 즐비하게 늘어선 곳이 베데스다 연못가이다(5:3). 뿐만 아니라 결핍이 불러온 지나친 경쟁과 책임 전가만이 이 연못을 휘감고 있었다.
세상의 인간적 현실을 향하여 예수께서는 “네가 낫고자 하느냐” 질문을 던지신다(5:6). 흑암과 혼돈이 가득하던 세계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말씀하셨던 것처럼(창1:3) 예수께서는 질병과 어둠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향하여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시는 것이다.
그러나 세속적 경쟁과 책임 전가에 익숙한 병자의 반응은 ‘나를 물에 넣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간다’는 불평뿐이었다(5:7). 그의 말에선 만연한 경쟁의식과 책임 전가만이 발견될 뿐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드러나 있지 않다.
책임전가에만 급급하던 아담과 하와를 위해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해 입히셨던 것처럼 예수께서는 이 병자를 향해 ‘일어나라’ 명령하시며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어그러짐을 회복시키셨다. 이 병자는 육체적 질병에서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병과 그 근원에서 해방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예수의 치료는 이 병자에게서 경쟁의식과 책임전가를 종식시키고 38년이나 이 사람을 괴롭혔던 지긋지긋한 패배의식과 숙명론을 몰아내셨다(자리를 들고 가라는 말씀(5:8)은 이런 의미를 지닌다).
요한복음은 이러한 치유 사건을 예수의 부활에 대한 표적으로 제시하면서 부활 안에 있는 능력이 어떤 것인지 문틈으로 살짝 보여준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하여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부활을 통한 영생이 주는 참된 에너지를 경험하게 되고, 우리의 삶과 이 세상을 변화시켜 가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그 세상에서 경쟁과 패배의식과 책임전가, 치명적 숙명론은 사라지고 생명과 치유와 하나님의 영광만이 가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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