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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19일 수요일

목사로서 떳떳하게

작년 9월 장신대에서 신대원 3학년 헌신예배가 있었다.
이제 사역의 현장으로 나가는 학생들에게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라는 제목으로 박동현 교수님이 설교를 하셨는데,
내 가슴을 찌르는 말씀이 있었다.
그 말씀은 교수님에게 전달 된 전자우편에서 시작된다.

[지난 8월 하순에 신대원 올해 졸업생 한 분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전자우편을 받았습니다.

“ ... 오늘은 한 가지 여쭈어 볼 것이 있어서 메일을 보냅니다. 저는 공부를 더 하기 전에  한국의 교회를 위해서 무얼 공부하면 좋을까 하는 마음으로 전임전도사를 해보기로 결정하고 현재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담임목사님도 아주 인격적인 분이시고, 제가 하고 싶어 하는 작은 목회를 마음껏 할 수 있습니다. 조금 가난한 것을 제외하고는 다 좋습니다. 형편이 많이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주위에서 보이는 것은 이쪽에서 계속 일하면서 평생 밥을 먹고 살려면
1) 큰 교회 목사님 아들이 되든지 (이건 이제 힘들지요)
2) 아니면 영향력 있는 목사님의 계보에 서든지 (이것도 아주 귀찮고 힘듭니다. 저는 전에 있던 교회에서 이와 같은 제안을 받고 아주 깜짝 놀랐습니다.)
3) 미국 유학을 다녀와서 좋은 스팩을 만들든지
4) 그것도 아니면 대형교회의 부목사로 생활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서른이 넘었는데도 아직 갈 길을 못 정하고 있습니다. 평생 목사로 살 각오는 되어 있는데 저 혼자 각오한다고 일자리가 생기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서론이 길었네요. 제가 여쭈어보고 싶은 것은 좋은 목회를 위한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질문이 너무 포괄적인가요? 저는 현재 교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한두 해 후에 외국에 나가서 공부하려고 합니다. 한국의 교회에서 부목사 생활을 하기에는 안 좋은 것을 너무 많이 보아서 배울까봐 두렵기도 하고 사실 젊은 저는 외국에서 생활해서 다양한 경험과 견문을 넓히고 싶은 욕심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떠한 공부를 해야 좋은 설교를 하고 나중에 좋은 목회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출세 말고 적어도 생존을 위해서 지금의 길에서 한 발자국 도약해서 무언가 도전해야 하는데 위의 1.2.4번은 도저히 먹히지 않아서 그나마 3번을 택해보려고 합니다.
학교를 소개해달라고 부탁드리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한국 교회에 젊은 저 같은 사람이 어떠한 공부를 하면 도움이 될까요?
저는 그냥 동네교회의 건강한 목사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동네가 인천이건 서울이건, 동경이건 동남아의 어느 시골이건 그냥 목회하고 싶습니다... “

며칠 기도하며 생각하다가 짤막하게 답변을 적어 보냈습니다.

“ ... 좋은 선배 목사님의 지도를 받으며 열심히 교역에 힘쓰고 계시다니, 참 기쁘고 반갑습니다. 앞날을 두고 주변에서 하는 이런저런 이야기에 마음이 상하셨군요.
교역자는 주님께로부터 부름 받은 사람이므로 그 앞날도 오로지 주님께 달려 있음을 잘 알고 계시지요?
그런 만큼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그저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이 나를 어디로 이끄시려고 하는가에 마음을 두고 그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어디 가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주님께 여쭈어 볼 수밖에 없지요.
아울러 나 자신에게 떳떳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지요 ... ” ]

앞 부분은 전자 우편을 보낸 분의 질문이고 뒷 부분은 교수님의 대답이다. 나의 마음을 찌른 것은 다름 아닌 교수님의 마지막 말씀 "나 자신에게 떳떳하게 사는 것"이었다.
이 말씀을 듣는데 마음이 뜨끔하며 아팠다.

나는 현재 대형교회 부목사다. 교수님께 질문을 보낸 졸업생의 분류에 의하면 평생 이 계통에서 밥벌어 먹고 살 수 있는 마지막 네 번째 요건을 갖춘 셈이다.(그런데 사실은 그렇지도 못하다. 대형교회 부목사에 대한 뭔가 오해가 좀 있는 것 같다.)
나는 대형교회 부목사고 속 모르는 친구들은 내가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남들 눈에 탄탄한 길을 가고 있는 듯 보이는 그런 생활을 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2년여 전,
영락교회 전임 전도사로 2년의 사역을 마치고 다른 교회 임지를 찾아야 했다. 사임할 날은 다가오는데 임지가 결정이 되질 않았다.
이력서를 10통 넘게 제출했다. 대형교회 경험은 영락교회로 족하다고 여겼기에 중소형 교회들을 중심으로 이력서를 제출했는데 모두 퇴짜를 맞았다. 그래도 그 중에 세곳에선 면접이라도 봤다. 사실, 한 곳에서 오라는 연락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담임목사님이 쫓겨나 공석으로 있는 교회여서 차마 가지 못했다.

갈 곳 없어 방황(?)할 때, 아는 분의 소개로 지금 섬기고 있는 대형교회에 부임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대형교회 부목사'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대형교회 부목사로서 별로 떳떳하지 못하다는데 있다. 그래서 교수님의 설교 말씀 중, 나 자신에게 떳떳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들으며 뜨끔했는가보다.

대형교회? 나쁘지 않다. 대형교회 부목사? 그것도 당연히 나쁘지 않다.
비록 대형교회가 여러 문제들을 가지고 있지만(적어도 내 시각에선 대형교회가 건강하다고 생각되진 않지만) 그래도 대형교회는 대형교회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고 긍정적 영향력도 많이 가지고 있다. 대형교회를 대형교회라는 이유만으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대형교회 부목사도 마찬가지다. 대형교회가 있으니 누군가는 그곳에서 교회를 섬겨야 하고, 좋은 것들을 배우며, 자신의 실력도 키우고 유능한 인재로 성장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누군가를 섬기며 귀한 삶을 살아간다. 누군가가 대형교회에 부목사로 있다는 이유만으로 편견의 대상이 된다면 그건 옳지 않다.

내가 대형교회 부목사로서 떳떳하지 못한 것은 대형교회가 나쁘거나 대형교회 부목사라는 직책이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대형교회 부목사라는 직책이 내 신념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큰 교회는 현실적으로 교회다운 교회를 이룰 수 없다고 믿는다. 그런데 나는 큰 교회에 있다.
나는, 교회는 그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하나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나는 도저히 그럴 수 없는, 대형교회라는 현실에 눌러 앉아 있다.
나는,  부목사도 목사라고 믿고, 목회란 교인들과 말씀, 그리고 삶을 나누는 영적 여정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나는 교인들과 일만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대형교회 부목사인 것이 별로 떳떳하지 못하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현실을 탓하고 있지만 그것이 핑계라는 것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다.

이제는 이런 저런 핑계들은 휴지통에나 던져야겠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떳떳하게 살 수 있어야겠다.
윤리적 잘못들도 돌아보고 회개하며
현실에 안주한 삶도 개혁하고
목사다운 목사가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