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양식
‘누가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가?’ 다른 표현을 쓰자면 ‘누가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인가?’ 라는 핵심적인 대화에 이어 본문에는 제자들과 예수께서 나눈 대화들이 기록되어 있다. 특별히 제자들과의 대화는 여인과 사마리아 사람들의 예수에 대한 고백인 ‘그리스도’, ‘세상의 구주’ 라는 표현 중간에 위치하며 메시아로서의 예수의 사명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대화는 크게 두 가지 내용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하나님의 일을 완성시키는 것이 메시아의 양식이라는 것. 둘째, 추수 때가 되었고 제자들은 추수 꾼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
태초(1:1)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계획이 메시아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다고 요한복음은 주장한다. 예수께서는 그 일을 위해서 오셨고 그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으셨다(4:34). 예수께서는 심지어 이 사명을 먹고 산다고 표현하셨다.
예수께서 완성시켜야 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획은 ‘추수’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씨 뿌리는 일에 참여하여(세례 요한이나 이전의 예언자들을 의미할 것이다) 밭은 희어졌고 추수해야 할 결정적인 때가 도래하였다.
추수를 기다리고 있는 열매는 ‘영생에 이르는 열매’이다.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영생이라는 열매를 위해 하나님은 일하셨고 지금 그 일이 눈앞에 열려 있다. 사실, 요한복음이 기록된 목적도 예수를 믿음으로 이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20:31).
이 영생은 ‘누가 하나님의 백성인가?’ 혹은 ‘누가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가?’라는 정체성의 문제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내세의 생명을 보장받는 것과는 관련이 없다. 영원한 생명은 죽음 이후에 영혼이 ‘천국’에 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종류의 영생을 포함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성경에 사용된 ‘영생’의 궁극적 의미는 정체성에 관한 것으로 ‘그가 진실로 하나님의 백성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그러므로 영생을 얻었다는 말은 그가 하나님의 참 백성이 되어 하나님을 참으로 예배하는 자가 되었다는 의미(4:23)이고 이 땅에서 하늘의 권세를 가지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의미이다(1:12). 또한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함으로서 마침내는 다시 살아나게 될 자임을 의미하는 말이다(11:25-26).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거두는 예수의 사명이 사마리아인들의 믿음 사이에서 언급된 것이 이 단락의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이다. 쉽게 말해 이방인처럼 취급당하던 사마리아인들과의 만남 한 복판에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참 백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4:36) 그 일이 성취되고 있다고 선언하신 것이다(4:34).
사마리아인들의 예수를 향한 고백인 ‘세상의 구주’라는 말(4:42)은 이런 맥락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 됨이 혈연이나 지연에 얽매여 있지 않듯이 예수께서는 온 세상의 구주가 되시며 예수를 통하여 누구나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
‘세상(kosmos)’이란 단어는 특별히 요한복음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단어이다. 요한복음은 이 세상을 향한 뜨거운 관심을 가지고 있다.
비록 이 세상이 예수를 알지 못하여 어두워졌지만(1:9-10) 하나님은 끝까지 세상을 사랑하신다(3:16). 여전히 악하고(7:7)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15:18)이지만 예수께서는 여전히 세상을 위하여 중보하시며 온 세상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원하신다(17:21).
현재 세상은 세상 임금인 마귀의 권세아래 놓여 빛을 보지 못하지만 예수께서는 세상의 구주가 되셔서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세상 임금의 권세를 심판하실 것이다(16:11). 예수의 사역으로 이 세상은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참 백성이 된다. 이것이 예수께서 세상의 구주가 되심의 의미이다.
이 역사는 유대인들에게서 시작하여 사마리아인을 거쳐 온 세상으로 확장된다. 구원이 유대인으로부터 난다는 말씀(4:22)은 이 사실을 잘 보여준다.
유대인에게서(전치사 ek) 구원이 난다는 말은 구원이 유대인으로 말미암는다(전치사 dia)는 의미가 아니다. ek라는 전치사는 ‘안에서 밖으로’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이다. ‘서울에서(ek) 부산으로’라는 말을 할 때 사용되는 전치사가 바로 ‘ek’이다.
그러므로 구원이 유대인(복수)에게서 난다는 말은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인 유대인으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사마리아를 넘어 온 세상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참으로 예수께서 세상의 구주가 되시는 것이다.
지금도 복음은 지역과 인종을 뛰어넘는다. 모든 계급과 계층도 뛰어넘는다. 경제적 계층이나 사회적 계층, 어느 것도 복음의 장벽이 되어서는 안 된다. 비록 세상은 악하지만 예수의 복음은 그 세상을 향하고 있고 그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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