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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4일 토요일

미래목회 포럼 '자정 선언 결의문'

비교적 보수 성향을 가지고 있는 미래목회 포럼에서 교회와 목회자들의 자정을 요청하는 선언 결의문을 발표했다.

발표 내용이 매우 긍정적이고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눈에 띄는 점은 목회자에 대한 비판이 가장 우선시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비판이 원론적 이야기에서 비교적 구체적 대안으로 옮겨갔다는 부분도 고무적이다.

이런 긍정적인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한국교회가 이미 자정능력을 상실한 것 아닐까 하는 우려가 깊다.

이 또한 일부 목회자들의 자기 반성으로 끝나버릴 공산이 크기 때문이리라.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교회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는, 그 결과 교회의 사회적 이미지에 결정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는 대형교회에 대한 비판이 빠졌다는 것이다.

결의문 전문을 여기에 옮겨 본다.


자정 선언 결의문

작금에 이르러 한국 기독교와 교회는 그 존재 의미에 관한 질문이 제기되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교회와 지도자들에 관한 비판은 바깥으로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안으로 교회에서도 예민하게 감지되고 있다. 그리고 교회는 그와 같은 비판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가 교회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으며, 이는 자주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비판의 범주가 '우리'가 아니고 '나'의 문제로 옮겨갈 때에 비판의 예봉은 무뎌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설교와 가르침을 통한 원론적 비판에는 익숙하나, 그것으로 자신을 아프게 비판하고 갱신하는 데는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그 결과, 문제에 대한 인식만 무성할 뿐 실제적인 해결을 하고자 하는 노력은 결여되어 있다. 자신이나 자신과 연관 관계를 갖는 문제일 때 우리는 머뭇거리고 결국 원론적인 천명에 그치고 만다.

불교와 가톨릭에 비하여 성장이 둔화된 교회 지표들, 매스컴 등을 통한 교회와 지도자들에 대한 비판들에 근거하여 여러 단체와 운동들이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으나, 정작 구체적 사안들에 대한 지적에는 주저하고, 따라서 그에 이어지는 행동도 없는 기독교가 되고 말았다. 행동이 없는 지적은 오히려 교회의 자괴감을 더하고 사회가 교회를 비판하는 빌미를 제공할 뿐이다.

오늘날 세상이 교회를 비판하는 많은 내용들은 교회의 자정 과시의 경쟁에서 나온 정서가 매스컴에 전달되고, 사회에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듯한 감도 있다. 불교나 가톨릭과 같은 종교들에 있어서 내부의 문제를 대책도 없이 드러내기 경쟁을 하고, 그것이 스스로의 순수함과 정당성을 증명하는 듯한 일은 찾아보기 힘들다. 결과적으로 한국교회는 가장 투명하고, 가장 비판받기 쉬운 놀이터의 유리잔과 같은 신세가 되어 버렸다. 목회자들이 여러 문제에서 스스로를 제외시키지 않는 아픔과 위험성을 감수하고서라도 이와 같은 갱신을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에게 제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 목회자
(1)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권위주의와 신비주의의 양극단에 편향되어 있다. 정상적인 신학과 인격의 검증이 없이 만들어진 목회자가 양산된 것이 그 이유이다. 물론 그와 같은 소양이 절대적 조건이 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합리적 목회와 민주화 훈련을 결여하고 있는 목회자가 억압과 신비를 도구로 목회를 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의 근원이 되고 있다.

(2) 목회자 후임 선정은 한국교회가 겪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일부 규모가 큰 교회의 목회자들이 현직에서, 혹은 은퇴 시 받는 대우는 지나친 면이 있어 열악한 조건과 환경에서 사역하는 많은 사역자들의 심리적 박탈감의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함께 지고 영적 지도를 하는 동료 목회자로서의 의식을 약화시키는 이유가 되고 있다.

일부 목회자들이 누리는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열매들은 또한 그들의 후임 선정에 있어서도 정의로운 절차를 결여시킨다. 거기에는 목회자들의 목회 사역 동안 형성된 강한 영향력과 추종이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자주 부정의한 후임 선정 과정에서 한국 민족이 갖는 강하고 독특한 자녀 사랑이 왜곡되어 반영되고 있는 것을 본다. 기회 균등과 공정한 심사를 바탕으로 하는 후계의 연속성은 사회 정의의 첫걸음이다.

(3) 원로목사

교회의 목회자로서 사랑과 존경을 받다가 은퇴할 때 갑자기 찾아오는 두려움과 소외감은 인지상정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사회가 갖는 자연적 법칙이다. 은퇴 전 자신이 누려왔던 영향력에 연연해 차후 교회와 후임 목회자들과 대립적 위치에 서게 되는 일이 자주 목도된다. 노련한 은퇴자에게 신임 목회자의 미숙함과 실수가 눈에 띄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은퇴한 목회자가 어떤 방식으로든 교회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교회와 사회의 기본적 룰을 혼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4) 가짜 학위와 명예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에게 가짜 학위 문제가 우리 사회의 다른 어떤 분야보다 심각하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다. 그것은 오늘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어떤 정신을 가지고 사역에 임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한 지표이다. 학위는 진지한 연구와 노력의 결과로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학위 자체가 그 사람의 영성과 도덕성, 목회자의 자질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고학력 사회가 된 오늘 평신도들의 수준에서도 각종의 박사 학위가 남아도는 현실이다.

지금은 학위가 그 사람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는 시대를 넘어서고 있다. 또 남아도는 것이 박사 학위이다. 그리고 사회는 학위가 목회에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선 목회자 가운데 학위를 표시하는 일이나 단기 과정의 학위를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허위 학력을 인정해 주고 속아 주는 사회는 이미 지나갔다.

(5) 담임목사 위주의 교회 경영

한국교회는 목회 임지와 목회자에 대한 수요와 공급을 맞추지 못했다. 어림잡아도 수요에 비하여 두 배 이상의 목회자들을 생산하였다. 양이 늘어나면 질이 떨어지는 것은 만고불변의 법칙이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 임지가 없어, 또는 미자립으로 인해 생계 문제로 인력 시장을 서성이는 일은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의 위상이 어디에 와 있는지를 말해 준다.

수요와 공급의 경제 법칙을 무시한 과잉 생산은 미래 목회자들과 교회에 대한 죄악이다. 혹자는 숫자의 잉여가 선교와 교회 개척의 힘으로 이어질 것을 기대하지만 그것은 탐욕의 저의에 대한 변명이다. 이에 대한 하나의 해결안으로서 담임목사 1인을 목회의 중심으로 하고 교육·문화와 같은 부문을 분담하여 맡는 공동 목회 지도력의 구조를 제안해 본다.
2. 한국교회 (1) 교단의 정비

'대한예수교장로회'라는 교단이 200개가 넘는다는 기막힌 보고가 있다. 신념이나 신학에 의한 역사적 교단의 분열은 되돌릴 수 없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교단 난립을 정비하고 차후의 교단 분열을 방지하는 협의와 조처가 필요하다.

제안하기는 인지도가 분명한 20~30개 교단으로 정리하고 기타의 난립한 교단을 통합하든지, 최소한 구분을 하는 조처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 독립 교회

교단의 분열과 함께 현재 나타나는 흐름은 소위 '독립 교회'이다. 현재 독립 교회가 존재하는 것은 교단 구조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로 차후 한국교회를 혼란에 빠뜨릴 것으로 보인다. 교단은 교단대로 교회의 자율성과 독특성을 여유 있게 받아들일 자기 구조의 갱신이 있어야 할 것이고, 독립 교회는 자신만의 의를 넘어서서 교단의 한계를 정상적인 테두리와 구조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3) 교회의 지역주의

한국 사회 변동의 과정에서 배타적 지역 정서는 잘못된 방향으로 이 사회가 발전돼 온 결과이고, 일부 정치인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이용한 정서이다. 교회가 그와 같은 오류와 오도를 교정하고 모범을 보일 의무와 책임을 가진다. 그러나 목회자들과 교회들이 모범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조장하고 앞장서는 듯한 모습들과 결과들이 나타나고 있다.

자신이 속한 지역과 문화를 사랑하는 애향심은 당연하다고 하더라도 오늘 한국교회의 배타적 지역주의는 자칫 한국교회를 지역적으로 분할할 정도에 이르고 있다. 우선 각 교단의 지방 신학교들을 연계하고 통합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목회자와 교회가 출신 지역을 중심으로 집합하고 동조하는 모습을 경계하고 지양해야 할 것이다.

(4) 선교사들

교단들은 선교사 숫자와 교회 숫자에 연연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의 경우 한국에서 적응하지 못한 부적응자들이 해외 선교사로 파송되고 있는 면도 있다. 물론 누구에게나 제2의 기회에 대한 문은 열려 있어야 하겠지만, 거기에는 철저한 자기 갱신과 적절한 훈련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있다. 그들의 선교 사역과 재산 등에 관한 통제와 조절이 필요한 시점이다.

(5) 성장 지상주의의 교회

오늘날 교회의 수적, 양적 성장이 곧 교회와 목회자의 도덕성과 영성을 평가하는 우선적 기준이 되고 있다. 수적, 양적 영향력을 가진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다른 목회자들이 종속되고 줄을 서고 있는 형국이다. 대교회 성장의 가장 큰 요인은 소위 '수평 이동'이다. 이것은 대형 교회의 성장은 다른 교회, 목회자들에게 빚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시의 교회들은 농어촌 교회에 빚졌고 신도시 교회는 구도시의 자원 이탈에 빚졌다. 대형 교회와 목회자들은 자신들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는 교회에 빚졌다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6) 금권 타락 선거

한국교회의 금권 부정 선거의 작태는 그를 바라보는 양식 있는 신앙인들을 아연실색하게 한다. 선거의 타락 양상은 너무나 보편화되어 이제는 교계의 일각에서는 당연한 상식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전후 한국 사회는 경제 발전과 민주화의 두 가지를 성공적으로 이루었다. 타락 선거는 사회를 비판하고 정화해야 할 책임이 있는 교회가 오히려 사회보다 뒤처져 있는 가장 뚜렷한 부분이다. 교단장이 되기 위하여 사용되는 선거 비용을 접하면 그와 같은 사실을 사회보다도 교인들이 알까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선거에서 서로를 향한 비판과 흑색선전으로 재수습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큰 상처를 입게 된다. 그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선거의 공정성과 합리성은 반드시 이루어 내야 할 한국교회의 시급한 과제이다.

지금 한국 교계의 모든 자리에서 돈이 거래되고 있다. 교회 지도자들은 교인들이 낸 헌금으로 권력을 사고 있다. 한국교회는 교계 연합 기관이나 교단의 기관장 자리를 놓고 거래되고 있는 이 돈 봉투로 인해 망가져 가고 있다. 이 더러운 관행이 언제부터 교계 인사 제도에 기어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 당장 개선하지 않으면 교계는 날이 갈수록 물신주의에 빠져들고 말 것이다.

이런 상태로는 사회를 향한 한국교회의 정의와 성결의 부르짖음이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교회는 어떤 경우에도 돈으로 표를 매수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한국교회가 더 이상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를 지를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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